티메프 ‘폭탄 돌리기’ 인식·시점 규명 주력
검찰 ‘판매대금 전용’ 위법성도 검토 … “채권자 많아 자율 구조조정 쉽지 않을 수도”
대규모 정산지연 사태를 일으킨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티메프는 서울회생법원의 승인에 따라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에 돌입, 성공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이준동 반부패수사1부장)은 지난 1~2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과 이시준 큐텐 재무본부장의 진술 내용 등을 토대로 이번 사태가 어디서부터 초래됐는지, 경영진은 재무위기를 언제 인식했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지난주 압수수색한 사무실·주거지 10곳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추가 압수수색을 벌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용권한·내부절차 등 따져봐야 =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1조원대 사기 혐의와 400억원 횡령 혐의를 잠정적으로 적시했다.
이 가운데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검찰은 거래 당시 약정된 의무를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로 상대방을 속여 거래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앞서 법원은 이번 사태와 유사한 머지포인트 관련 판결에서 전자금융업 등록을 위한 재무 건전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언제든 사업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판매분을 사기 금액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계속 손실이 누적되고 달리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는 구조 하에서 돌려막기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며 경영진 두 명에 대해 각각 징역 4년과 8년을 선고했다.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검찰은 티메프측이 사업 중단 가능성을 인식했는지와 그 시점 등을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를 어느 정도 입증하느냐에 따라 사기 혐의액도 현재의 1조원보다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검찰은 또 티메프의 판매자 이용 약관, 관련자 진술 등을 검토해 회사가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대금을 운용할 권한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특히 판매대금 정산에만 써야 하는 돈을 모그룹의 계열사 인수·합병이나 자체 프로모션에 썼다면 이는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용도가 한정돼 있지 않았더라도 적절한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금을 유용해 판매대금 정산지연을 초래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티메프 모기업인 큐텐은 지난 4월 티몬으로부터 해외 쇼핑몰 ‘위시’ 인수 자금 명목으로 200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류광진 티몬 대표는 이를 나흘 뒤에야 사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자협의회 구성부터 = 이런 가운데 티메프는 서울회생법원 승인에 따라 ARS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ARS는 회생절차 개시 결정에 앞서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 자율적인 구조조정 협의가 이뤄지도록 법원이 지원하는 제도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2018년 ARS 제도를 도입한 후 지난해 6월까지 22개 업체가 절차에 돌입해 10곳이 자율조정 합의에 성공했다.
다만 ARS 절차를 통해 정상화를 추진한 기업들은 대체로 주요 채권자가 은행 등 금융기관이었다. 금융기관은 자체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갖춘 경우가 많고 금융 채권자들이 협의해 기업구조조정(워크아웃)을 추진할 수도 있다.
반면 티메프는 채권자 구성이 다양한 데다 그 수도 11만명에 달한다. 채권자들과 협의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2일 서울회생법원은 티메프의 ARS 프로그램 신청을 승인하며 한 달간 회생절차 진행을 보류했다. 보류 기간은 최장 3개월까지 연장될 수 있다.
티메프는 이 기간 우선 주요 채권자가 참여한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법원은 지난 2일 심문에서 티메프에 판매자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등을 포함해 채권자협의회를 고르게 구성하라고 강조했다.
향후 법원이 ‘절차 주재자’를 선임하면 양측이 본격적인 협의에 돌입한다. 만약 협의가 무산되면 법원이 강제적인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기각하면 두 회사는 사실상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피해자들 폭염 속 ‘우산 시위’ = 한편 티몬의 대규모 판매대금 정산지연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폭염 속에서도 연일 카드사와 PG사들에 환불을 촉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티몬 피해자 모임’ 회원 10여명은 체감온도가 35도까지 오른 4일 정오쯤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앞에서 1시간가량 1인 릴레이 ‘우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이 건물에 입주한 한국정보통신을 비롯한 PG사와 카드사들에 “즉각 환불하라”고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시간 끌기 그만하고 즉각 취소하라’ 등이 적힌 우산을 들고 한 명씩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또 ‘한국정보통신은 소비자에게 환불하라’ ‘카드사 X PG사 떠넘기기 STOP(중지) 즉각 환불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함께 들었다.
이들은 전날 낸 호소문에서도 “피해자들은 티몬이라는 다수의 고객이 이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를 사용해 결제한 것일 뿐”이라며 “수년간 믿고 결제해왔던 카드사가 전자상거래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시간을 쪼개가며 넣는 민원에 이렇다 할 답변도 없이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법원에 따르면 현재 채권자 수는 티몬 4만7000여명, 위메프는 6만3000여명으로 11만명에 달한다.
장세풍·구본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