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공격’ 대 ‘선제 타격’ 초긴장 중동
이란 “침략자(이스라엘)는 벌해야” … 이스라엘 “공격으로 전환 준비”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우리는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를 원치 않지만 침략자(이스라엘)는 벌해야 한다”면서 “중동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으나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의 모험적 행태에 대응해 억지력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란은 하니예 암살에 책임 있는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합법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란 국영매체 IRIB에 따르면 모하마드 가셈 오스마니 이란 마즐리스(의회) 의원도 이날 의회에서 지난 4월 이란이 이스라엘 영토를 보복 타격했던 ‘진실의 약속’ 작전을 거론하며 강도 높은 보복을 촉구했다. 특히 그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죽음까지 거론했다. 오스마니 의원은 “또 다른 ‘진실의 약속’ 작전이 하니예를 위한 피의 복수가 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네타냐후의 죽음보다 덜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새벽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하니예가 암살당한 후 이란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고 보복을 여러 차례 다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하니예 사망 이튿날 이스라엘에 대한 가혹한 보복이 의무라며 강력한 대응을 지시했다. 최고지도자 지시는 본인이 취소하지 않는 한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
지난 3일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과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이르면 5일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5일 “공격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란트 장관은 이날 이스라엘군 공군 지하 벙커를 찾아 “여러분이 보여준 능력 덕에 우리의 적들은 발걸음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란이 보복 공격을 할 경우 군사적으로 재보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갈란트 장관이 모든 전투 영역에서 공격적 행동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군의 준비 태세를 점검한 데 이어 중동 내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중부사령부의 마이클 에릭 쿠릴라 사령관을 맞아 역내 안보 상황을 함께 평가하고 합동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네타냐후 총리 역시 밤 회의에서 ‘억제적 수단’으로써 이란을 선제적으로 공격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 또 같은 날 각료회의에서는 “우리는 벌써 ‘이란 악의 축’과 다면전을 치르고 있다”며 “우리를 향한 어떠한 공격행위에도 무거운 대가를 물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측의 충돌조짐이 갈수록 격화하면서 미국과 아랍권 국가 등 주변국들의 중재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전면전을 우려한 미국과 주변 아랍권은 이란을 자제시키려 하지만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대응이 전쟁을 촉발해도 상관하지 않는다”며 묵살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슬람권의 종가’ 격인 요르단도 이례적으로 하이만 사다피 외무부 장관을 테헤란에 급파해 막판 보복 자제 설득을 시도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은 5일 긴급회의에서 낸 성명을 통해 “중동의 긴장 고조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모든 관련 당사자가 보복성 폭력의 파괴적인 순환을 지속하는 것을 자제하고 긴장을 낮추고 긴장 완화에 건설적으로 참여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개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안보서기도 5일 이란을 급거 방문해 이란 지도부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쇼이구 안보서기는 확전을 피하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메시지를 이란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재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하메네이의 ‘의무적 보복’ 지시를 받은 이란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며, 이스라엘 역시 맞대응을 피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란이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교란하기 위해 목표물의 수를 늘릴 수 있다며 레바논과 예멘·이라크의 ‘저항의 축’ 무장세력 등이 투입된 공격에서 미군이 동시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전장은 이스라엘, 이란,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 중동 6개국으로 번지게 된다.
미국이 중동지역 군사력을 증강하는 동시에 요르단, 카타르 등과 긴급하게 소통하며 확전을 자제시키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