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 방치한 공정위·금융당국 책임론 확산일로

2024-08-06 13:00:28 게재

공정위, 온플법 백지화·자율규제 추진하다 ‘사각지대’ 자초

금감원, 티메프 자본잠식 2년 전부터 알고도 서류 검토만

정무위 강준현 “한기정 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책임져야”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를 둘러싸고 정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은 지난 2022년부터 티메프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을 알고도 ‘경영개선 MOU’만 맺고 현장점검 한번 하지 않았다. ‘경영개선 MOU’는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자율규제다. 결국 2년 동안 티메프의 재정상태는 더 악화됐다. 이 때문에 6만명의 거래자영업자와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소비자들이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입게 됐다. 거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도산하기 시작하면 경제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답변하는 한기정·이복현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 세번째)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미정산대금 1조원 육박할 듯 = 공정거래위원회 책임도 크다. 플랫폼산업 특성상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자본력이 없고, 내부 경영통제도 허술하다. 지난 2020년 무렵부터 플랫폼업체의 거래기업에 대한 경영적 갑질을 막기 위해 법안(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 논의가 무성했다. 당시 온플법에는 대금정산 기한을 규정하고, 거래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출범과 한기정 공정위원장 취임 후 ‘온플법은 백지화, 플랫폼은 자율규제’로 방향을 틀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다수 전문가들이 ‘자율규제로 독과점 폐해를 막을 수 없다’고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온플법 백지화 2년여 만에 ‘티메프 사태’로 돌아왔다.

정부에 따르면 이미 티메프의 미정산 규모는 3000억원(5월 거래분)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6·7월 거래분까지 포함하면 8000억원은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강준현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더불어민주당·세종시을)는 6일 “금감원과 공정위는 사전에 티메프 사태를 인지했음에도 아무런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한기정 공정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잠식 알고도 방치한 금융당국 = 티메프사태는 2021년 8월 발생한 ‘머지포인트 사태’와 닮은꼴이다. 플랫폼산업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특히 오프라인 대형유통업체와 달리 e커머스는 판매 대금 정산 기한이 없다. 대형유통업체는 법에 따라 거래업체에 40일 이내(직매입은 60일)에 정산을 해야 한다. 당시 머지포인트 사태는 이런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부족한 투자금을 판매 대금으로 돌려막으며 ‘폰지 사기’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폰지사기는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을 말한다. ‘티몬 캐시’라는 선불충전금의 환불이 어려워진 것 또한 머지포인트 사태와 닮았다. 머지포인트 사태는 1000억원 규모였지만 시장에 일대 혼란을 불러왔다. 티메프사태 사고금액은 10배에 육박할 수도 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이미 2022년 티메프가 자본잠식상태라는 점을 파악하고도 조치를 제대로 안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2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자본잠식상태인 티메프와 ‘경영지도비율 준수를 위한 분기별 경영개선 협약(MOU)’을 맺었다. 티메프는 MOU에서 투자 유치와 완전자본잠식 상태(자기자본이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금감원은 티메프를 상대로 선불충전금 관리는커녕 ‘자기자본이 항상 0을 초과해야 한다’는 전자금융감독 규정상 기준 충족 기한을 2026년으로 연장해 주기까지 했다. 입점업체 정산 지연 문제 역시 티메프 사태가 불거진 7월에 들어서야 관리하기 시작했다.

2022년부터 2년 여 금감원은 티메프로부터 서면으로 자료를 받아봤을 뿐 현장 점검은 한 차례도 시행하지 않았다.

‘티메프 피해자들’ 릴레이 우산 시위 티몬·위메프(티메프) 피해자가 지난 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인근에서 환불 등을 촉구하는 릴레이 우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온플법 백지화로 티메프사태 자초한 공정위 = 공정위는 ‘플랫폼 자율규제’ 정책을 고집해 티메프 사태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정부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했던 온라인플래폼법(온플법)이 시행됐다면 티메프와 같은 미정산 사태는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원 법무법인 흰뫼 고문은 “당시 온플법 초안은 플랫폼업체가 거래업체에 제때 정산하도록 규정하고, 불공정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면서 “온플법이 시행됐다면 티메프사태를 예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고문은 2021년 당시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으로 근무하며 온플법 제정 실무책임을 맡았다.

티메프는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결제 대금이나 판매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정산대금을 활용했다. 대금 정산기한을 최대 70일로 정한 뒤 당월 판매 수익으로 전월 판매 대금을 정산하는 돌려막기 수법을 동원했다. 특히 여행상품 등의 경우 정산기한이 수개월까지 늘어졌다. 여행 상품은 소비자가 상품 결제(예약)를 한 뒤 실제 여행을 갈 때까지의 기간이 다른 상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소비자가 실제 여행 일정보다 수개월 전에 상품을 결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메프는 여행상품 정산을 판매일 기준이 아니라 출발일 기준으로 헸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티몬·위메프를 통해 ‘12월 출발 상품’을 6월에 예약하고 결제했다면, 여행사가 티몬·위메프로부터 판매 대금을 정산받는 것은 결제 뒤 최장 8~10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

6~7년 전부터 논의된 온플법이 제때 시행됐다면 이런 ‘원시적 금융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윤석열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온플법 제정 대신 ‘자율규제’를 내세웠다. 플랫폼과 거래하는 입점업체의 보호를 법령이 아닌 업권 내 ‘자율 규제’에 맡기기로 정책 기조를 잡은 탓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취임 이후 ‘온플법 백지화’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추진한 온플법 초안에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의 내용과 정산절차 등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표준계약서에 담았다. 또 플랫폼 업체가 입점 업체에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 조건을 설정·변경하거나 이행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제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온플법 제정·전자상거래법 개정 논의 = 이 때문에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온플법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판매대금 돌려막기’를 예방하기 위해 전자상거래법과 전자금융거래법 등을 개정해 이커머스 회사의 회계에서 운영자금과 판매대금을 분리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무위 강준현 간사는 “법 개정이 필요한 전자상거래법 등은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정무위에서 논의 중”이라며 “새로 제정해야 하는 온플법도 정기국회 회기 내에서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대통령실이 플랫폼업체 자율규제를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플법 제정과 전자상거래법 등의 법 개정에 협력해달라”고 촉구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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