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사업재편 정정신고서 제출…합병비율 원안대로 추진
'극단적 불합리·주주가치훼손' 논란 지속
합병검사인 제도 … 이사 책임 강화 필요
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논란이 불거졌던 두산그룹이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라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제출했다. 하지만 합병비율은 바꾸지 않고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해 불공정 합병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들이 함께 도입되어야 한다며 합병검사인 제도의 도입과 이사의 책임 강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주 달래기에 나선 두산 =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일 오후 두산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는 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등 증권신고서에 관한 기재정정 공시를 제출했다. 지난달 24일 금융감독원이 정정을 요청한 데 따른 조치다. 이번 정정신고서를 통해 두산그룹은 분할 합병의 목적과 향후 회사 구조 개편에 관한 계획, 합병가액과 그 산출 근거를 전보다 상세히 기재했다. 3사는 또 5일부터 주주서한을 보내며 주주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3사는 합병을 통해 성장세가 높은 원전 사업에 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일반 주주들이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분할·합병 비율’은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비율은 1대 0.63으로 원안을 유지한 것이다. 이번 안이 통과되면 두산밥캣 주주는 자신의 주식 1주 대신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받게 된다.
지난달 두산그룹은 두산밥캣,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고자 한다고 밝히며, 인적분할합병과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할 것임을 공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합병 비율과 관련해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 산하로 보내며 교환 비율을 현재 시장 가격으로 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세미나에서 “영업이익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로보틱스와 매출 9조7000억원·영업이익 1조3000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는 밥캣의 자본거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거의 1대 0.63이라는 것은 극단적 불합리”라고 꼬집었다.
국회에서는 ‘두산밥캣 방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에너빌리티 이사회가 밥캣을 로보틱스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이런 분할합병을 택한 것이 배임 혐의 소지가 있다”며 “범죄 혐의가 있어서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고 에너빌리티 주주 손해가 우려되는데 금감원이 이 신고서를 그냥 수리한다면 금융당국의 투자자보호의무 위반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금융당국으로 쏠린다. 금감원이 이번 정정신고서에 다시 보완 요청을 할지 승인할지 주목된다.
◆계열사 간 합병 ‘공정성 담보’ 중요 = 이런 가운데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장법인의 M&A 절차상 주주 보호를 위한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반 주주에게 불리한 합병비율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합병가액 산정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현재 자본시장법상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산정방식은 신뢰할 수 있는 거래소 주가를 통해 평가자의 의문을 최소화하고 예측가능성을 제고하여 투자자 보호에 기여한다는 측면도 있다”면서도 “주가에 의해 획일적으로 산정되는 합병가액이 주식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때문에 미국, 일본, 영국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의 산정을 회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상 합병가액으로 허용될 수 있는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합병이 성사되기도 한다. 실제 2019년 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미국의 상장법인간의 합병 총 333건을 분석한 결과, 미국 상장회사의 합병가액이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 따른 기준시가 이상인 경우가 전체의 86.2%(287건)에 달했다. 기준시가를 10% 할증한 가격 이상으로 거래된 경우는 77.2%(257건), 기준시가를 30% 할증한 가격 이상 거래된 경우도 56.8%(189건)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일본의 88건 합병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발표된 합병액이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 따라 산출한 기준시가 이상인 경우는 전체의 90.9%(80건)에 해당했다. 기준시가의 10%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된 경우가 전체의 81.8%(72건), 30% 이상인 경우도 55.7%(49건)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즉 동일한 합병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루어졌다면, 두산밥캣과 같은 소멸회사의 주주들이 기준시가보다 높은 합병비율을 인정받고 더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으로 보호 어려워…삼성물산 주주 6년 후 주식대금 지급 받아 = 합병비율에 불만이 있는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주주 보호가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식매수청구권제도는 회사에 남지 않겠다는 주주들의 주식을 회사가 매수해 주는 제도일 뿐 회사에 계속 머물면서 정당한 주식가치를 보장받기 원하는 주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주주 입장에서 회사가 제시한 금액을 수용하지 않고 더 공정한 금액을 요구하려면 법원에 주식매수가격의 결정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 기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다. 법원에 주식매수가격결정을 신청하는 사건은 많지 않고 대법원까지 간 사건은 더 작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을 분석해 보면 최소 537일에서 최대 3925일까지 소요된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삼성물산의 경우 주주들은 주주총회일로부터 2463일이 경과한 이후, 즉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후에 주식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황 연구위원은 합병으로 손해를 입은 주주에 대한 구제수단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합병비율이 불공정해도 법에서 정한 산식대로 했다면 주주들은 합병 무효의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고 실질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황 연구위원은 “미국, 일본에서 인정되는 합병유지청구권을 도입해 주주들이 불공정한 합병의 중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독일에서 인정되는 합병관계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도입해 주주들의 손해에 대해 이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