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책연구원 엇갈린 전망…“내수부진, 경기회복 제약”
KDI는 “내수 미약해 경기 개선 제약 … 고용여건도 점차 조정”
“반도체 제외 생산 정체 … 미국 경기침체 우려 등 대외 불확실성↑”
내수부진 판단 9개월째 유지 … 소매판매액·투자규모 감소 주목
정부는 내수부진보다 수출 회복흐름에 더 무게 “경기회복 확대”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경기인식이 3개월 연속 서로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수출 회복세에 주목하며 하반기 경기회복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국책연구원인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소비·투자·건설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보다 경기가 악화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경기 회복 흐름이 확대되고 있다는 정부와 상반된 진단이다.
대외불확실성도 더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고,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다소 확대되는 흐름이란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기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지적에 힘을 싣고 있다.
8일 기재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부의 경기전망은 정책목표와도 관련이 있어 가급적 긍정적 지표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최근 내수 부진과 대외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은 엄중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부진 장기화 흐름” = KDI는 ‘8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가 지속됐으나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며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지난달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모습“이라고 진단한 뒤, 이달에는 더욱 악화했다는 진단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내수에 대한 인식이 한 달 만에 ‘내수 회복세 가시화되지 못해’에서 ‘내수가 경기 개선을 제약한다’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브리핑에서 ”소비, 투자, 건설이 모두 부진하다“며 ”경기 진단을 악화한 이유는 부진이 장기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수출 호조세에 내수 회복조짐이 가세하며 경기회복이 확대되고 있다”(기재부 7월 최근경제동향)는 정부의 진단과는 상반된 모양새다.
◆내수 흐름에 주목한 KDI = KDI가 이런 판단을 내린 배경의 핵심은 내수부진이다.
KDI는 서비스업 생산이 낮은 증가세에 머무르고 건설투자는 감소세를 지속하는 등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경기가 생산과 수출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으나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의 생산이 다소 정체된 가운데 소매판매액과 투자가 감소하는 등 내수는 부진한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6월 서비스업생산(2.1%→0.5%)은 도소매업(-3.7%), 숙박 및 음식점업(-1.2%) 등이 감소하며 낮은 증가세에 그쳤다. 건설업생산(-3.0%→-4.6%)은 전월에 이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위축된 모습이다. 이같은 영향으로 6월 전산업생산(2.3%→0.5%)은 증가폭이 축소했다.
6월 소매판매(-2.9%→-3.6%)는 승용차(-9.2%→-21.4%)가 기저효과에 주로 기인해 대폭 감소했다. 또 의복(-5.3%→-4.6%)과 음식료품(-3.7%→-2.8%) 등을 중심으로 감소세를 이어갔다. 소비재 내수출하(-6.1%)도 크게 감소하며 상품소비의 부진을 시사했다.
서비스소비는 숙박 및 음식점업을 중심으로 둔화 흐름을 나타냈다. 서비스업생산은 도소매업(-3.7%), 숙박 및 음식점업(-1.2%) 등의 부진으로 0.5%의 낮은 증가세에 그쳤다. 다만, 해외여행, 해외소비와 밀접한 부문에서는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다만 6월 설비투자는 기저효과 등으로 감소폭(-1.5%→-2.7%)이 확대됐다. 변동성이 높은 운송장비(2.9%→-11.5%)의 감소폭이 커진 가운데 기계류(-2.9%→1.0%)도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의 부진 완화를 시사하는 지표도 일부 나타났다. 반도체제조용기계가 8.1% 감소하면서 전월(-28.8%)의 극심한 부진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다. 반도체투자와 밀접한 특수산업용기계와 의료정밀측정제어기기의 수주 합산액(3.9%)이 증가세를 유지했다.
내수의 또 다른 축인 건설지표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6월 건설기성(불변)은 건축부문(-9.7%)을 중심으로 감소폭(-3.0%→-4.6%)이 확대됐다. 건축부문의 경우 주거용(-3.9%, 경상)이 누적된 수주 부진이 반영되며 감소세를 지속했고 비주거용(-14.8%, 경상)도 주요 반도체 생산시설의 공사가 지연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수주가 비교적 양호했던 토목부문은 11.1% 증가했다.
특히 건축허가면적(-23.2%)은 사업 여건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전월에 이어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골조공사 등 초중반기 공정에 사용되는 레미콘의 출하량이 크게 감소(-24.3%)하며 향후 공사물량이 축소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KDI는 ”소매판매 감소세와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지속된 가운데, 건설수주의 누적된 부진이 건설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짐에 따라 고용 여건도 점차 조정되는 모습“이라며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고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다소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경기회복”의 무게 = KDI의 이런 경기인식과 달리 정부는 수출과 경기회복 흐름에 주목하며 상반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7월호를 통해 3개월째 ‘내수 회복 조짐’이 보인다며 낙관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제조업과 수출 호조세에 내수 회복 조짐이 가세하며 경기 회복 흐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총평했다. ‘부진한 내수가 경기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는 KDI의 평가와 온도 차가 크다.
시각차는 경기 국면을 분석하는 방법론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두 기관은 모두 경기 판단에 통계청이 발표하는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활용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월 대비(계절조정)’로, 연구원은 ‘전년 동월 대비’로 지표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올 6월 경기를 평가할 때, 정부는 같은 해 5월과 비교 분석하고 케이디아이는 지난해 6월과 비교하는 식이다.
정부는 최근 석 달 동안 내수 지표가 전달과 비교해 개선되고 있다고 봤고, 케이디아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내수 경기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간과 해외기관들이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는 가운데 정부만 ‘나홀로 2.6% 성장률 전망’을 고집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브리핑에서 2분기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연간 성장률 전망치 2.6%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은 ”하반기 흐름이 중요하긴 하지만 당초 2.6%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