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금투세 폐지’· 이재명 ‘종부세 완화’… 중도 쟁탈전 시작

2024-08-08 13:00:15 게재

1400만 주식투자자, 한강벨트 부동산 소유자 표심 호소

‘자산 가치 상승 통한 잠재적 과세자들 겨냥한 구애’ 해석

한동훈 “퍼펙트 스톰” 경고하며 “금투세 폐지가 민생”

이재명, 기존 원칙엔 ‘교조적’ 비판하며 ‘막사니즘’ 강조

양 극단 지지층들에 기대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거대양당이 중도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에 나섰다. 노동에 의한 부의 축적이 어려워지면서 주식, 부동산 등 투자자산 가치의 상승을 ‘기대’하는 중도층에 ‘감세’카드를 던졌다. ‘공평 과세’나 ‘부자감세 반대’ 원칙은 뒷전으로 밀렸다.

여야 정책위의장 상견례 국민의힘 김상훈,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왼쪽)이 7일 오전 국회에서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8일 민주당 의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종합부동산세 완화는 이재명 전 대표의 ‘중도층 공략’ 전략 중 하나로 부상했다. 지난달 22일 KBS에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이 전 대표는 종부세와 관련해 “조세는 국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지 개인에게 징벌을 가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점에서 반발이 있다는 현실을 우리가 인정하자”며 “1가구에 대한 실거주 1주택에 대해서는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JTBC 토론에서는 “실제로 거주하는 1주택 1가구에 대해서는 저항까지 감수할 필요가 있냐”며 “지난해 이들에 대해 부과된 종부세가 900억원밖에 안 된다는데 종부세에 갇혀서 정치적으로 압박받을 필요가 있냐”고도 했다.

현재는 정부마저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포기한 상태다. 세제개편안에서 정부는 종부세 폐지안을 아예 넣지 않았다. 이 전 대표가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는 가장 앞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민주당 모 관계자는 “강남뿐만 아니라 한강 벨트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보수쪽으로 향하고 있다”면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 보수화되기 일쑤인데 이들을 잡기 위해 종부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노무현정부에서 ‘보유세 강화’의 일환으로 제시한 종합부동산세는 민주당의 대표적인 부동산 가격 완화 정책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가 ‘성역은 없다’며 칼을 빼들었다.

민주당이 호남 정당에서 벗어나 수도권 정당으로 자리 잡으면서 2회 연속 ‘절대과반’의석을 확보했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으로 과반의석을 얻는 성적을 거둔 데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의 완승이 큰 몫을 했다. 서울 강북구 도봉구 서대문구 등이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본다면 한강벨트는 서울에서 완승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중도보수’ 진영까지 표심 영토를 확장시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교조적으로 매달려 국민한테 고통을 줘선 안 된다”고 했고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면서는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먹사니즘’을 꺼내들었다. 민주당에서 내세우기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성장론’도 거리낌없이 내세웠다. ‘먹사니즘’ 아래에서 ‘원칙 고수’는 ‘교조주의’로 치부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는 미국발 쇼크로 국내 증시가 휘청거려 투자자들의 불안이 극도로 높아졌을 때 ‘1400만명을 위한 금융투자세 폐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통령실도 별도의 입장문까지 내며 힘을 보탰다. 한 대표는 “금투세를 강행한다면 하반기의 세계적 불안 요소들에 더 큰 불안 요소를 더하는 ‘퍼펙트 스톰’을 우리 스스로 만들고 우리 스스로 거기 들어가는 것이 될 것”이라며 “금융투자세(금투세) 폐지는 민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 국민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최근 미국 경기 경착륙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등락을 반복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우리 증시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주가 하락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이 강행될 경우 대부분이 중산층인 1400만 일반 국민 투자자가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 역시 ‘국민 저항’을 이유로 금융투자세 과세와 관련해 유지해 온 민주당의 원칙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민주당은 그동안 ‘이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원칙과 부자감세 반대 원칙을 고수해왔다. 이 전 대표는 지난 6일 당대표후보 토론회에서 “주식 시장은 꿈을 먹고 사는데 5000만원까지 과세를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저항을 한다”며 “조세는 국가의 부담을 개인에게 부과시키는 것이지 징벌이 아니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토론에서는 금투세 과세 유예 의견도 냈다.

한 대표의 ‘금투세 폐지’와 이 전 대표의 ‘금투세 유예, 완화’ 움직임은 세금을 내는 ‘과세대상자 1%’보다는 세금을 낼 수도 있거나 낼 만큼 이익을 올리고 싶은, 또는 주가가 하락할 것을 불안해하는 ‘1400만명의 투자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종부세 납부자보다는 종부세를 납부할 수도 있는 많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자’ 들의 욕망을 겨냥해 이 전 대표가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해석과도 맞물려 있다.

한편 이미 대선행보에 나선 이 전 대표의 중도표심을 잡기 위한 금투세나 종부세 완화가 실제 민주당 정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이 전 대표가 금융투자세 과세 대상을 ‘실현 이익 5000만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에 대해 “금투세 도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고 또 당신도 주식 투자를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공제 한도 5000만 원을 한 두 배쯤 상향하면 반대 여론이 조금 누그러들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판단 때문에 그러신 것 같다”며 “이재명 대표께서 5000만 원을 1억 원으로 공제한도를 상향하자라고 주장했던 것은 무슨 정밀한 검토나 판단 때문에 하신 말씀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내부의 역학 구도나 이런 걸 볼 때 관철될 가능성이 되게 높아 보인다”는 지적엔 “총의로 그렇게 결정되면 따르겠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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