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약자지원법 정부·여당 속도
“노동약자 ‘기댈 언덕법’”…노동계 “약자 지위 고착화”
프리랜서 “임금체불 돼도 호소할 기관 없고 소득증빙도 어렵다” … 근로기준법 대항법안이 아닌 보완재여야
국민의힘과 정부가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을 지원·보호하기 위한 가칭 ‘노동약자지원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주도로 추진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응한 성격이다. 금속노조는 “노동약자를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제3의 지대로 묶어내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약자 지위를 고착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보다 근로기준법 대상을 확대하거나 노조활동을 보장해주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임이자 의원(국민의힘, 경북 상주·문경)이 7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당론으로 법안을 발의하기에 앞서 각계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한동훈 당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총출동해 힘을 실었다. 임 의원은 “노조법 개정(노란봉투법)은 임금근로자 2200만명 중 노조에 가입한 240만명을 위한 것인데 노동약자지원법은 노동법 보호 범위에 들어올 수 없지만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소위 말하는 보수당, 우파 정당이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며 “실용정당으로 실용적인 노동약자를 지원하고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5월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며 노조 밖 미조직 근로자나 플랫폼 종사자 등을 위한 법 제정 의사를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노동정책실 산하에 ‘미조직근로자지원과’를 신설하고 노동약자지원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달 31일 이정식 장관 후임으로 지명된 김문수 고용부 장관 후보자도 취임 일성으로 노동약자 보호를 강조했다.
#. “임금체불을 당해도 마땅히 호소할 만한 기관이 없다. 소송을 하라는데 쉽지가 않다. 에이전시가 지위의 우월성을 이용해 70%까지 수수료를 챙기는 등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우기홍 프리랜서 통·번역가
#.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강의비는 얼마나 받아야 하고 세금은 얼마나 떼야 하는지 전혀 몰라 3.3%(사업소득), 8.8%(기타소득) 등 주는 대로 받았다. 소득 증빙도 어렵다.” -이기영 프리랜서 강사
#. “대리운전 기사는 소득증명이 어렵워 은행에서 대출받기도 어렵다. 대출이 안되면 고금리인 사채를 쓰는데 빚을 갚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많다.” -이미영 ‘카 드라이버 부산·울산·경남 대리운전기사공제회’ 공동회장
#. “공장 경영 악화로 재화사업장이 더 이상 시내에 남아있기 힘들다보니 노동자들의 출퇴근이 어려워지고 있고 근무환경이 상당히 열악하다. 환경개선사업 등 좋은 정부 사업들이 있지만 혜택을 보기 어렵다.” -이준우 제화사업장 디자이너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특고)·플랫폼 종사자,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이 현 노동법체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현장증언이다.
고용부 산하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장’인 권 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를 통해 “사회적 약자 보호에서 누구에게 그런 의무부담을 지울 것인가가 중요한데, 전통적인 노동법 체계는 사용자를 특정하고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근로자 보호가 구현되도록 설계됐다”며 “문제는 지불능력이 아예 없는 근로자 같은 사용자가 존재하고 산업 구조적 변화로 사용자가 모호하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발생해 기존의 노동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동법의 딜레마와 노사의 공허한 논쟁 = 권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노동법을 둘러싼 노사 주장 모두가 딜레마에 빠져 공허한 논쟁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노동법의 적용범위를 단순 확대’를, 사용자측은 ‘노동법 적용 배제’를 주장하는데 이는 모두 새로운 추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집단적·규격적 노동에서 개별적 자유노동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서 ‘종속노동’을 주장해야 하는 ‘근로자성 오분류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종속적 지시 관계에서 도급과 위탁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누군가를 사용자로 특정해야 하는 사용자 특정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노동약자 지원 및 보호를 위한 법체계 모형 구축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타인의 사업을 상대로 한 노무제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자로서 ‘사회적 보호필요성’이 높은 사람에게 상응하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제도 실패를 메우기 위해 모색된 법 체계가 바로 노동약자지원법”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약자지원법 책임주체 국가·사회 = 즉 노동약자보호법은 ‘노동법의 적용범위’와 ‘사회적 보호 필요성’ 사이의 미스매치(부조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율체계라는 것이다.
먼저 근로나 위탁 등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사회적 보호 필요성이 있는 ‘노무제공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책무를 규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노동약자지원법 보호대상으로 △사업주의 지불능력 부족으로 사실상 노동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타인의 사업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자영적 노무제공자(특고·플랫폼 종사자 등 비임금근로자) △헌법상 단결권 행사가 사실상 어려운 경우를 꼽았다.
보호내용으로 공제회 등 상호부조 활성화 지원, 법적 분쟁 발생 시 상담·조정 지원, 표준계약서 마련, 경력 인증, 노무제공에 따른 보수 미지급 위험 최소화, 직업훈련 기회 제공, 고용·산재보험 등 사회안전망으로의 포섭 등을 제시했다.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사업주 책무인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은 그것대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책임 주체가 국가와 사회인 노동약자보호법은 근로기준법의 대항법안이 아닌 보완 법안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우리 사회 노동약자들에게 국가는 ‘기댈 언덕’이 돼줘야 한다”며 “다만 노동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배려와 은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지원과 보호에 상응해 노무제공자들의 상호조직화된 소통을 촉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노동시장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