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약국 처방전 중계’ SK텔레콤 무죄
대법 “단순 처방전 중계” … 9년 만에 결론
사업총괄 전 직원 “퇴사 후 재판, 너무 힘들어”
환자의 의료 정보가 담긴 처방전을 전자화해 전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텔레콤에 대해 대법원이 9년 만에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SK텔레콤은 병원에서 약국으로 정보를 단순히 전송하는 중계자에 불과해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처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SK텔레콤과 임직원 3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11일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SK텔레콤은 2010년 12월 전자처방전 서비스를 시행했다. 병원에서 발급하는 종이 처방전 하단에 바코드가 출력되고, 환자한테 처방전을 받은 약국이 바코드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처방 정보가 약국 전산망에 입력되는 형태였다.
SK텔레콤은 병원의 처방 정보를 암호화된 형태로 서버에 보관하다가 약국이 바코드를 입력하면 그대로 전송하는 중계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이후인 2014년 처방 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했고 2015년 7월 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SK텔레콤은 수사가 진행 중이던 같은해 3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SK텔레콤과 임직원들은 전자처방전 서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약 2만3000개 병원으로부터 개인정보 7800만건을 받아 중계 서버에 저장하고, 건당 수수료 50원을 받아 약 36억원의 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이를 방조한 혐의를 받았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의료 기록과 같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민감정보로 분류하고, 개인의 동의 없이 처리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의료법은 병·의원 외부로 환자 정보, 처방 정보를 반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SK텔레콤측은 재판에서 병·의원으로부터 처방전을 전송받아 암호화해 서버에 임시로 저장하고, 약국에 전송될 때 복호화(암호화 반대)하도록 해 민감정보를 다루지 않았으며, 병·의원과 약국 사이에서 전자처방전을 단순 중계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암호화된 정보를 그대로 전송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누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1심과 2심은 SK텔레콤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처방정보를 암호화된 상태로 일시 보관하다가 그대로 약국에 전송했으므로 내용을 지득하지 못했고, 처방정보를 약국에 전달하는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서버 저장 역시 처방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며 “암호화된 상태의 처방정보가 민감정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이 전송한 처방정보는 이미 환자가 약국에 제시한 종이처방전에 기재된 것과 동일한 내용”이라며 “약국에서 이미 보유하고 있는 종이처방전의 내용과 동일한 처방정보를 단지 전자적 방식으로 약국에 전송한 행위를 전자처방전에 담긴 개인정보를 누출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도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민감정보를 병·의원으로부터 수집·저장·보유하거나 약국에 제공해 처리했음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게 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병·의원이 약국에 처방전을 전송하는 것을 단순히 중계하는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검찰이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4년간 심리한 끝에 무죄·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죄 및 의료법 위반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 사업을 사실상 총괄하다 재판에 넘겨진 전 SK텔레콤 매니저였던 송 모씨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이 사건으로 부담을 느껴 퇴사한 뒤 9년간 재판을 받으면서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속 시원하다”고 밝혔다. 이어 송씨는 “당시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이후 정신적인 충격으로 4년간 약으로 버텼다”며 “개인 생활은 물론 가정생활도 엉망이 됐는데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SK텔레콤측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