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무회의’에서 보여준 협치의 진면모

2024-08-10 10:39:16 게재

어찌하오리까/김진섭/지성사/2만3000원

미국을 본떠 만든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군신이 견제해온 조선의 통치방식과 비슷한 측면이 적지 않다. 임금과 대신이 어전에서 건의하고 논쟁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국무회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어찌하오리까’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어전회의를 통해 조선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어찌하오리까’ 표지
‘어찌하오리까’ 표지

역사 이야기꾼인 저자 김진섭은 조선 어전회의 기록을 정치 경제 민생 법률 문화 풍속 등으로 나눠 재편집하면서 조선왕조를 지탱해온 리더십을 펼쳐 보였다.

우리나라는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회의를 매주 한번씩 열고는 국정 운영의 핵심 내용들을 테이블에 올려 논의, 결정한다. 조선의 어전회의 중 핵심인 경연은 현재의 국무회의를 다소 확장한 ‘확대 국무회의’쯤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 회의엔 국무위원에 해당하는 정승·판서뿐만 아니라 수석비서관 격인 대간·홍문관 등의 관원, 기록을 맡은 사관 등이 참석했다. 경연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매일 두세 차례씩 열었다. 그만큼 현안들을 자주, 심도있게 다뤘다는 얘기다. “조선시대의 경연은 국왕과 신하 간 교류와 소통의 기회이기도 했고, 경연의 성패가 백성들 삶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책은 조선왕조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만들어내고 협치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개국 초기에 국정에 부담을 주는 천도를 강행하려던 태조와 이를 말리던 정도전, 왕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서경 문제로 끝까지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은여림과 태종, 양반인 황효원이 노비의 딸을 적처로 삼은 문제를 두고 성종과 대신들이 대립한 사건, 금주령을 위반하면 사형에 처했던 영조 마음을 돌린 구상 등은 왕과 대신들이 해를 넘기면서까지 논의를 거듭하는 소통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명나라 풍수지리가를 고집하며 그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던 선조 등 불통의 사례도 들어가 있다.

대신들이 왕에게 보고한 내용엔 당대의 풍습이나 백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관직에 나갈 때 거쳐야 했던 악질적인 신고식인 ‘면신례’, 신분이 다른 남녀의 결혼이 조선의 3대 송사 중 하나인 노비 송사의 주요 원인이 된 이유, 밤새도록 술을 파는 날밤집과 ‘목로’라는 나무 탁자를 두고 서서 간단히 마시는 선술집, 안주인은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팔뚝만 내밀어 술과 안주를 내준다는 팔뚝집 등 발달한 주막 문화 등을 설명하는 대목은 영상 같은 현장감으로 재미를 더해준다.

저자 김진섭은 춘천교육대 겸임교수와 동국대 만해마을 교육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 우리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강의와 교양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조선의 책’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 ‘정도전의 시대를 읽다’ 등 다수의 책을 냈고 ‘김치의 혁명을 몰고 온 고추’, ‘우산, 근대와 전근대가 만나다’ 등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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