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손태승 친인척에 350억 부당대출…‘조직적 개입 의혹’ 수사 선상에

2024-08-12 13:00:20 게재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금감원, 제보 받아 검사 … 4년간 전체 대출 규모 616억원

우리은행 “본부장의 부당한 업무지시” … ‘개인일탈’로 선긋기

“최대한 빨리 수사기관 통보” … 수사결과에 따라 파장 클 듯

우리금융그룹 긴급 임원 회의, 임종룡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

우리은행이 4년 간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친인척에게 616억원의 대출을 실행한 사실이 금융당국 검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대출과정에 지주와 은행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 규모가 크고 장기간에 거쳐 대출이 이뤄졌으며 이중 350억원은 대출심사와 사후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과 절차를 따르지 않은 부적정 대출이어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직원의 177억원 대출 사기 사건이 드러난데 이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 대한 3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적발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금융감독원은 11일 이 같은 내용의 ‘우리은행 대출취급 적정성 관련 수시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사과정에서 발견된 차주 및 관련인의 허위서류 제출 관련 문서 위조, 사기 혐의 등에 대해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거의 준비가 다 됐고 협의를 거쳐 최대한 빨리 수사기관에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부당대출에 대해 “담당 본부장의 부당한 업무지시, 대출 차주의 위조서류 제출 등 여신심사 절차가 소홀한 데 기인한다”고 밝혔다. 개인의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또 대출을 취급하기 이전에 특정인에 의한 지배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설명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우리은행의 이 같은 해명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지만, 금감원도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지주와 은행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을 하지 못한 상태다. 다만 금감원은 “(손 전 회장이) 지주 및 은행에 지배력을 행사기 이전, 해당 친인척 관련 차주 대상 대출건은 5건(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고 밝혀, 손 전 회장 취임 이후 대출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이번 부당대출 사건이 경찰이나 검찰로 넘어가면 ‘조직적 개입 의혹’과 관련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부당대출로 나간 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사용처에 대해서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대출을 받은 차주들이 일정 금액을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출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결과에 따라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미칠 파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와 함께 최근 잇따라 터진 횡령 사건으로 신뢰 회복이 시급한 우리금융그룹이 또 다시 치명타를 입게 됐다.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9개 차주도 드러나 =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 (재임기간 2018년 12월~2023년 3월)의 친인척 관련 11개 차주(법인 및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454억원(23건)의 대출을 취급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원리금 대납사실 등을 고려할 때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대출금의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사례(9개 차주, 162억원)도 찾아냈다. 총 616억원(42건)의 대출이 23개 차주에게 실행됐으며 이 중 350억원(23건)이 부당대출로 드러났다. 지난달 19일 기준 전체 대출 중 19건(269억원)에서 부실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당대출 사례를 보면 △서류 진위여부 확인 누락(차주의 사문서위조, 사기 등 혐의 존재) △담보·보증 부적정 △대출심사절차 위반 △용도외 유용 점검 부적정 등이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부동산 실거래가격이 차주가 대출신청시 제출한 매매계약서상 매매가격에 미달했는데도 사실 확인 없이 2차 대출이 추가로 실행됐다. 또 거래처 대금지급 목적의 대출과 관련해 차주가 비정상적인 전자계산서를 제출했는데도 추가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았다. 2건의 전자계산서 승인번호가 동일했고 1건은 타 법인을 대상으로 발급한 계산서였지만 간단한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은 다수가 임 전 본부장(전 선릉금융센터장) 주도로 취급됐고, 임 전 본부장은 면직 처리됐다. 우리은행은 “자체 내부통제 및 부실여신 책임규명 과정에서 임 전 본부장 취급 여신 중 부당 취급 의심 건에 대해 올해 1~3월 중 1차 검사를 실시해 임직원 8명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임 전 본부장은 면직 및 성과급 회수, 관련 지점장 등은 감봉 등의 조치를 받았다. 손 전 회장 관련 여신 전체를 대상으로 한 2차 자체 검사를 6월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금감원 현장검사가 시작됐다.

◆임종룡 회장 "수사에 최대한 협조" = 우리금융그룹은 12일 오전 임종룡 회장 주재로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비롯해 지주사 및 우리은행 전 임원이 참석한 긴급 임원 회의를 열었다. 임 회장은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적정 대출에 대해 “우리금융에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고 계신 고객님께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임 회장은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 여전히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며 “이는 전적으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는 저를 포함한 여기 경영진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철저히 반성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지금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기업문화, 업무처리 관행, 상·하간의 관계, 내부통제 체계 등을 하나부터 열까지 되짚어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바꾸어나가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과 연계된 수사 과정에 최대한 협조해 시장의 의구심이 있다면 사실에 입각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주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금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최근 은행 직원의 177억원의 대출사기 사건을 비롯해 2022년 700억원대 횡령 사건 등 잇따라 부실한 내부통제가 문제로 지적됐는데 이번에도 내부통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다만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건에서 ‘내부통제 미마련’으로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었던 것과 달리 이번 부당대출이 금융지주와 은행 CEO에 대한 제재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출과 관련한 내부통제시스템은 이미 촘촘하게 갖춰져 있지만, 이를 위반해서 부당대출이 이뤄진 만큼 관련 행위자와 감독책임자에 대한 제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향후 금융관련 법령 위반소지 및 대출취급 시 이해상충 여부 등에 대한 법률검토를 토대로 제재절차를 엄정하게 진행하겠다”며 “지주·은행 지배구조 제도 개선 및 최근 지속 발생한 은행권 대출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 준비중인 ‘여신프로세스 개선’과 관련해 이번 검사결과에서 확인된 문제점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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