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부진에 성장률 전망치마저 ‘뚝뚝’…금통위만 쳐다보는 정부
KDI 성장률 전망 2.6→2.5% … 글로벌 IB들도 평균 0.2%p 하향조정
재정역할 높여야 하지만 작년보다 악화된 ‘세수펑크’에 재정 여력 없어
정부, 위법성 논란에도 “금리인하” 압박 … 금통위는 “시장 불안” 신중론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하반기 들어 하향조정 추세로 돌아섰다. 수출 회복세와 1분기 ‘깜짝 성장’에 힘입어 ‘장밋빛 전망’이 대세를 이뤘던 상반기와는 사정이 다르다.
핵심배경은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내수 부진이 누적되고 있어서다. 당분간 반도체 업황이 좋다지만 내수부진을 압도할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돌파할 방안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극심한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어서 내수부진을 벗어날 재정여력이 없다. 국채발행을 감수하는 방안이 있지만, 그러자면 정부 핵심정책기조인 ‘건전재정’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상 성장률 제고를 위해 정부가 동원할 수단이 별로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관심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금통위 내에서는 아직 ‘금리인하 시기상조론’ 기류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내수부진 여파, 성장률 하락세 =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낮췄다. 당초 올해 경제 성장률을 2.2%로 전망했던 KDI는 5월 2.6%로 높인 뒤 석 달 만에 하향 조정했다.
시장은 이미 ‘하향조정’이 대세가 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평균 성장률 전망치(지난달 말 기준)는 2.5%다. 전달보다 0.2%p 낮아졌다. UBS는 같은 기간 3.0%에서 2.3%로, 골드만삭스는 2.5%에서 2.3%로 낮췄다. 앞서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들도 2.6~2.7%에서 2.4~2.5% 수준으로 하향조정했다. 수출 호조세와 1분기 ‘깜짝 성장(1.3%)’에 따라 높아졌던 한국 경제 성장률 눈높이가 2분기 역성장(-0.2%)을 기점으로 다시 ‘원대복귀’하는 모습이다.
이들 기관들이 주목하는 지표는 ‘내수’다. 7월 수출액이 전년 동월보다 약 14% 증가하는 등 수출액이 10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자먼, 내수가 이를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부진하다는 뜻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는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2.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0.2%) 이후 9분기 연속 감소세다. 감소 폭은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09년 1분기(-4.5%) 이후 가장 컸다.
하향추세인 설비·건설투자 흐름도 주목된다. 투자부진은 결국 내수불황에 따른 경기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재정역할 높일 여력·의지 없어 = 내수를 살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의 재정역할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현 경제팀은 재정역할을 높일 의지도, 여력도 없다.
기재부가 발표한 ‘6월 국세수입 현황’을 보면 6월 누계 국세수입은 168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50조원대 세수펑크를 기록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도 10조원이 더 줄었다. 6월 누계 법인세는 전년 대비 16조1000억원 줄어든 30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증감률로 따지면 전년보다 34.4% 감소한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한은의 입’만 쳐다보는 모양새다.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의 ‘금리 발언’은 거의 ‘압박’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6일 “부동산 공급 대책이 금리인하에 더 좋은 여건을 조성할 것으로 본다”며 금리인하에 힘을 실었다. 6월에도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방송에 나와 “통화정책을 유연히 가져가야 한다”고 언급해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 논란이 일었다. 한 총리의 발언은 이보다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당은 더 직접적이다. 지난 6월 황우여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고금리가 자금 여력 없는 중소기업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지난 6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인하하라는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했다.
◆분위기 다른 금통위 내부 기류 =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헌법과 중앙은행법(한국은행법)을 통해 통화신용정책 수행의 조직적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통화량 조절이나 금리 결정이 그만큼 정치적 권위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결정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위법이다.
그러나 급증한 가계대출 증가 규모 등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이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 중심의 주택가격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점도 금리인하 신중론의 한 축이다.
실제 지난달 금통위 당시보다 집값은 올랐고 가계부채는 늘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주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지난달 말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7조5975억원 늘었다.
지난달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줘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수도권 집값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한 금통위원은 “과거 패턴을 고려할 때 이런 추세가 전반적인 주택시장 과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주택가격 상승은 가계부채 증가뿐 아니라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