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지구 평화의 보루 남극대륙

2024-08-12 13:00:28 게재

폭염에 지친 마음이 남극으로 향한다. 검색창에 ‘남극’을 입력해 보니, “남극이 심상치 않다…온도는 최고, 해빙은 최저, 질병도 꿈틀”, “남극 빙하에 따뜻한 바닷물 스며…해수면 상승 임계점 다가오나” “남극대륙, 겨울 한가운데 우려스러운 ‘폭염’ 겪어” 등 기후위기 관련 뉴스가 대부분이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인위적 열기 또한 심상치 않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와 군사연구소는 최근 중국과 이란이 남극대륙에 과학기지를 추가 또는 신규 설치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를 경계하고 대응을 촉구하는 논평을 싣고 있다. 호주의 전략정책연구소도 중국이 남극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자국의 쿤룬기지 일대를 남극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자 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중국의 유사 영토화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중국의 남극 유사 영토화 시도에 세계 각국 우려

그동안 남극대륙은 주변국들이 주권을 행사하는 북극해에 비해 국제정치적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1959년 조인된 ‘남극조약’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평화적 이용 및 과학 연구의 자유를 보장했다. 영유권을 주장하던 호주 뉴질랜드 칠레 아르헨티나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7개국도 권리를 동결하는 데 동의했다.

남극지역은 해양인 북극과는 달리 대륙이다. 대륙에 5000억톤의 석유와 3000억~5000억톤의 천연가스가, 인근 해저에 1350억톤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극 빙하 수천미터 아래에 있는 빙저호의 극한환경에서 생존하는 생물자원을 활용한 신약 개발 등 바이오산업도 유망하다. 최근에는 수분이 얼어붙어 없기에 우주와 가장 명확하게 교신할 수 있는 통신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금번 5번째 과학기지를 설치하는 외에 핵 추진 쇄빙선을 개발하는 등 남극에서의 활동 역량을 급속히 증대하고 있다. 이는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에 ‘빙상 실크로드’를 추가한 일대일로 전략의 일환으로서 ‘남극조약’ 체제가 장래 흔들릴 경우를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재 ‘남극환경보호의정서’가 광물자원 개발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2048년 이후에 협의 당사국의 3/4을 포함한 당사국 과반수의 동의로 변경이 가능하다. 따라서 2048년이 가까워질수록 남극대륙에서 지정·지경학적 열기는 점점 더해 갈 것이다.

한국은 1986년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1989년 23번째로 의사결정기구인 협의 당사국 자격을 획득했고, 2개 이상의 상설기지를 보유한 세계 10번째 국가다. 1988년에 설치한 ‘세종과학기지’는 해양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이며, 2014년에 설치한 ‘장보고과학기지’는 대륙 관련 연구를 맡고 있다.

‘평화의 남극’ 지경학적 분열 제어하는 최후의 보루

남극대륙에서는 존재가 곧 권력이다. 우선 2022년 수립한 ‘극지활동진흥기본계획’ 상의 2030년 ‘남극 내륙 과학기지’ 설치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기존 기지들은 해안에 위치해 내륙 빙하에 대한 탐사·연구가 어렵다. 한국의 ‘내륙 과학기지’ 설치는 세계 6번째로서 남극 연구의 선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과제다.

물리적 존재의 확대뿐만 아니라, 훌륭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고 국제적 협력 이슈를 발굴·주도하는 등 소프트파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27년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제49차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회의는 이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남극 공동경영 지배구조에서 입지를 넓혀가려는 궁극적 목적은 자원개발, 산업 발전, 선진국 추격 등 국익 추구를 넘어 평화지역으로서 남극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데 두어야 한다. 평화의 남극은 기후문제와 보건문제 등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력의 전통을 유지함으로써 지경학적 분열 현상을 제어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임종식 지경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