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VIP 격노설’ 규명 급물살 타나
해병대원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
윤석열 대통령 3개월치 통화기록 확보
국방부가 사건 기록 회수한 작년 7~9월
‘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 통신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이 직무를 수행 중인 현직 대통령의 통신내역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의혹에서 가장 ‘윗선’으로 꼽혀왔던 윤 대통령의 통화 내역을 확보함에 따라, 외관상 답보 상태로 보이던 공수처 수사가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최근 법원에서 발부받은 통신영장을 집행해 윤 대통령의 지난해 7~9월 휴대전화 통신 기록을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이 발생했을 무렵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과 수차례 통화했다고 알려진 시기다.
이 사건을 초동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해 8월 2일 사건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직후 윤 대통령은 이날 개인 휴대전화로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하는 등 이 시기 관련자들과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역이 확보된 해당 기간에는 채 상병이 순직한 뒤 국방부가 경찰로부터 사건 기록을 회수하고,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은 혐의자에서 빠진 시기도 포함된다.
이 당시 윤 대통령의 통화기록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죄 재판 과정에서도 일부 공개됐다. 박 전 단장 측 변호인이 법원을 통해 확보한 통신기록을 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일 낮 12시 7분~57분 사이 개인 휴대전화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1시 25분엔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 윤 대통령은 6일 뒤에도 이 전 장관과 통화했는데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기 전날이다.
공수처가 지난해 8월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 관련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이후 윤 대통령의 통신내역을 확보한 것은 처음이다.
수사기관이 현직 대통령의 통화 기록을 확보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직일 때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통화 기록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다.
공수처는 이번에 확보한 통화기록을 토대로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을 전후로 다른 군 관계자와 연락을 취한 적은 없는지 등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분석 결과에 따라 지난 5월 이른바 ‘VIP 격노설’과 관련한 해병대 관계자들의 진술과 녹취를 확보한 이후 다소 답보 상태에 있던 공수처 수사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공수처는 법원에 채 상병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통신영장을 세 차례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송창진 부장검사는 차장검사 직무를 대행하던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청원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직무를 하는 동안 청구한 통신영장이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수처는 최근 필요한 통신내역의 범위를 좁혀 통신영장을 한 차례 더 청구한 끝에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았으며, 여기에는 윤 대통령의 통신 내역이 포함돼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사들의 통화기록 보존 기간이 1년인 점을 고려하면 채 상병 사망 1주기인 지난달 19일 이후부터는 사건 관계자들의 통신내역이 차례로 폐기되는 탓에 공수처는 시급히 통신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