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북관계정상화 마중물은 분위기 조성이다

2024-08-13 13:00:17 게재

북한의 수해피해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수해복구 지원 제안이 사실상 거부되었다. 예로부터 모자란 것은 나눠 쓰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펼쳐왔던 우리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갈라졌는지 참 안타깝다. 하지만 이번 수해복구 제안에 대한 북한의 거부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남북간 대치국면에서는 아무리 인도적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가 왜곡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시작은 사실 북한이었다. 1984년 당시 서울과 경기지역의 막대한 수해에 대해 북한이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측 체제보다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의도, 그리고 1983년 버마 아웅산묘소 폭탄 테러에 대한 정치적 제스처 성격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공세로 끝날 일을 우리측이 받아들임으로써 그야말로 웃지 못할 사건이 되어버렸다.

물론 수해 물자지원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다소간의 회복기를 맞았고 1985년에는 남북 이산가족상봉과 상호 예술공연단 교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의 대결구도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북한이 우리정부 제안을 거부한 이유

그렇다면 반대로 북한도 우리측의 제안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상황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첫째는 탈냉전 이후 유래 없는 장기간 대치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측 제의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장기간의 신뢰 손상은 인도적 목적의 의미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수해복구 지원 제안에 대한 우리 언론보도를 비난하며 “모략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라고 언급했다. 결국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수해피해를 부풀리고 인도적 물자지원 명목으로 체제를 흔들려는 ‘술수’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 할지라도 정치공세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렇게 민감해 하는 대북 전단문제를 방치하고 있고 북한 인권문제를 공론화해 옥죄는 행태를 볼 때 북한의 입장에서는 수해물자 지원 제의가 순수하게 보일 리 없다. 만약 인도적 물자를 받을 경우 이를 계기로 남측은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며 남측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현재 설정한 적대적 2국가 관계, 교전국 관계와는 배치됨이 머리에 맴돌 것이다. 북한은 재해복구나 인민생활을 위해 국방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셋째로 지원을 받더라도 북한에게 전달될 물자가 북한 전역에 확산될 경우 체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1984년 북한이 전달한 쌀 옷감 시멘트 등의 품질 수준이 드러나면서 북한의 열악한 상황이 오히려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남측 드라마가 북한 지역에 돌아다니는 판국에 남한 물자들의 북한 내 유입을 허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마 러시아 구호물품 제공 역시 이러한 논리에서 검토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북한이 받지 않을 것이 뻔히 예견된 상황에서 우리측의 수해물자 지원 제의는 대북 우위의 명분을 쌓으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내포되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역시 정권의 이해에 따른 수세적·경직적 태도가 여전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남북이 언제까지 이런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신뢰회복은 상호체제의 존중과 비방·적대 행위의 중단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전체제 하에서 군사적인 대치를 쉽게 풀 수 없기 때문에 과거 우리 정부는 기능주의적인 접근법을 활용했다. 경제교류 민간왕래 인도협력 등을 통해 남북간 신뢰를 회복한 다음 정치·군사적인 변화로 확대코자 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이 되고 북한 체제의 연명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북한 정권의 타도 밖에는 통일의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만에 하나 현 정부가 그러한 입장에 있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더 어렵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남북은 서로에 대한 자극들을 자제하고 신뢰조성의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북한 호응할 수 있는 종합적 대북제안을

대북 확성기를 틀면서 임진강 범람 시 통보를 해달라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남북관계가 아니라 남북이 함께 피해를 볼 수 있는 재난재해 공동방제 보건의료 등 비정치군사 분야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그럴 생각이 있다면 단편적인 제안이 아니라 북한이 호응할 수 있는 분야의 종합적인 대북제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것을 공개하기 바란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성을 보이는 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