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대통령 부부 위한 ‘옥쇄’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21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법’과 ‘노란봉투법’에 대해서였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비판 받을 대목이 많다.
우선 너무 잦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절제했다. 노태우(7건) 노무현(6건) 이명박(1건) 박근혜(2건) 전 대통령이 그나마 거부권을 행사했고,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국회의 입법권 존중 차원으로 이해된다.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는 야당으로부터 ‘거부권 중독’이란 비판까지 받는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 탓을 하지만, 역대 대통령도 비슷한 환경인 경우가 적잖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상당기간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했지만 ‘정치적 타협’에 무게를 두면서 끝까지 거부권 유혹을 뿌리쳤다.
국민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국회를 존중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본인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관련된 ‘채 상병 특검법’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한 건 더욱 문제다.
야당은 “(거부권 행사는) 자신이나 배우자가 관련된 사안의 경우 당연히 이해충돌 금지 원칙에 의해 제척이나 회피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본인과 배우자가 관련된 특검법인 만큼 거부권 행사가 더욱 절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두 특검법은 여론 찬성률이 높다. 거부권 명분이 약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민심의 따가운 시선에도 ‘거부권 질주’를 멈추지 않을 기세다. 48.56%에 달했던 대선 지지율이 국정지지도 28%(한국갤럽, 7월 23~25일,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로 추락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김 여사도 마찬가지다. 대선 전에는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취임 이후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가 거부권을 앞세워 자신들의 안위만 도모한다면, 이를 중단시킬 책임은 여당에게 돌아간다. 윤 대통령 ‘거부권 질주’의 ‘부역자’ 노릇을 그만 두고 민심을 좇아야 한다. 당내 일각에서도 여당이 윤 대통령 부부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현실을 우려한다.
한 핵심당직자는 “윤 대통령 부부는 여당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옥쇄’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옥쇄’는 당도 죽고, 윤 대통령 부부도 망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과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거부’해야 한다. 그게 국민 눈높이를 맞추는 길이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