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균형 잡힌 낙관론이 필요할 때
최근 들어 다소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지난 8월 초 글로벌 증시는 예기치 못한 큰 폭의 하락을 경험했다. 특히 8월 초 사흘간 우리나라에서는 12%. 일본에서는 20%나 주가지수가 내렸고, 8월 5일에는 장중 주가지수가 각각 12%, 15%나 폭락해 역사상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증시 유독 더 큰 폭 하락
이 같은 폭락을 초래한 엔캐리 트레이드 대규모 포지션 청산의 주된 이유로 일단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엔화 가치 급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미국의 통화정책과 고용지표라고 할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확산되던 7월말 열린 미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과거보다 금리 인하에 한발 더 다가선 입장을 보였지만, 시장의 판단은 조금 달랐던 것이다.
FOMC 이후 통화당국의 실패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의구심이 늘어난 상황에서, 며칠 후 발표된 고용지표에서 실업률이 4.3%로 오르고 신규 고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저조한 수준으로 나타나자,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또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조만간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도 늘기 시작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미국의 빠른 금리 인하와 일본의 금리 인상이 다시금 엔화 가치의 급등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주가 급락은 결국 그 동안 글로벌 주가를 끌어 올렸던 유동성 공급과 경기 연착륙에 대한 기대, 나아가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등 모든 부분에서 동시에 경고등이 들어온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에 작년 4분기 이후 미국과 일본의 주가지수가 과도한 낙관론에 기대 세 분기 만에 40~50% 오른 특별한 상황, 즉 역사적으로 볼 때 과도하게 비싸진 상황이었으니, 하락의 폭이 더 커졌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같은 이유로 글로벌 증시가 추가로 급락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이번 급락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인 일본은행이 주가 급락 후 상당 기간 금리 인상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월 수준을 넘어서는 추가 엔화 약세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급작스러운 엔화 강세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이 반복될 경우 다시금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번 급락 과정에서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의 상당 부분이 청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경제 역시 완만한 둔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침체가 임박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낮아진 저축률로 미국 경제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제조업 경기는 이미 둔화 중에 있지만, 물가가 내리며 실질 소득이 개선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연준은 경기 부양에 필요한 충분한 실탄을 보유 중이다.
특히 우리나라 증시는 이번 급락으로 그렇지 않아도 낮았던 밸류에이션이 더 낮아졌다. 하락에도 불구하고 과거 평균 대비 밸류에이션 수준이 미국 증시,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나 엔화 가치의 움직임에 따라 변동성이 클 수 있는 일본 증시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불확실성 높아진 시장, 신중하게 대응해야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심한 충격을 받은 증시는 상당 기간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리적 위축 때문이다. 이번에도 추가적인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이나 통화정책 실수,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시장을 상당 기간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비관론과 낙관론을 신중하게 저울질하며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현재의 시장 불안은 오히려 주식 투자의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균형 잡힌 낙관론이 필요할 때다.
SK증권 경영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