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기업들이 ‘표적단백질분해’에 주목하는 까닭은?
TPD, 고농도 독성·내성 문제 극복 … 비약물성 단백질도 표적 가능
신약개발 기업들이 표적단백질분해(TPD)를 주목하고 있다. 비약물성 단백질도 표적이 가능하며 고농도 사용으로 생기는 중독과 내성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김정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보고서 8월호에서 “신약개발의 표적을 비약물성 단백질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과 기존 약물 치료제의 고농도 사용에 의한 독성, 약물 결합 구조 변성에 의한 내성 등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들이 TPD 기술에 대한 신약개발 업계의 높은 관심과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월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당뇨치료제 ‘오젬픽’으로 돌풍을 일으킨 글로벌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유럽 상장사시가총액 1위) 와 신약개발업체 네오모프가 14억6000만달러 규모의 TPD 신약 공동개발 및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5월 일본 제약사 다케다와 중국 신약개발회사 데그론 테라퓨틱스가 12억달러 규모의 분자접착제 개발 계약을 성사했다.
이는 지난 해 로슈가 분자접착제 개발사인 오리오니스 바이오사이언스, 몬테로사 테라퓨틱스와 각각 체결한 20억달러 규모의 파트너십 계약 등과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약물치료제는 약물이 표적단백질에 결합해 단백질이 보유하고 있는 활성이 발휘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분자기전으로 작동한다. 반면 TPD는 세포가 자연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단백질 분해시스템에 표적단백질을 선택적으로 근접시켜 해당 질병 단백질을 ‘제거’하도록 유도한다.
◆기존 약물보다 적은 양으로 효과 = 기존의 활성 저해 약물은 활성 억제 효능을 위해 표적단백질의 활성에 관여하는 특정 구조와의 강한 결합력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질병단백질의 약 80%는 화합물과 강한 결합을 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비약물성 단백질로 분류되고 이를 표적으로 하는 것은 신약개발의 난제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TPD 약물은 상대적으로 낮은 결합력으로도 표적단백질과 단백질분해 시스템의 근접성을 유도해 단백질 분해를 유도할 수 있다. TPD 약물을 통해 비약물성 단백질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또 기존 약물은 질병단백질 활성 억제를 위해 단백질과 결합을 1:1로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TPD 약물은 질병 단백질의 분해를 유도한 이후 분해되지 않은 단백질에 재사용될 수 있어 약물 하나가 다수의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약물보다 적은 양으로도 TPD 약물에 의한 질병단백질 제어를 가능하게 해 약물의 고농도 사용에 의한 독성을 피할 수 있게 한다.
◆TPD 신약 개발 국내외 활발 = 가장 먼저 개발에 착수되고 임상시험에 진입한 TPD 기반 신약은 프로탁이다. 아비나스는 호르몬 수용체인 AR과 ER을 표적으로 하는 경구용 프로탁, ARV-110과 ARV-471을 개발해 각각 전립선암과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2019년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2022년 발표된 중간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ER 프로탁인 ARV-471에 대한 객관적반응률을 보고한 환자가 2.8%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런 저조한 임상유의성은 프로탁 자체의 문제보다는 임상 디자인의 문제에 더 큰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말 경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임상 3상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RV-471은 화이자가 10억달러를 투자해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다. 아비나스는 이외에도 개선된 AR 프로탁인 ARV-766의 임상을 진행 중이다. 노바티스는 올해 아비나스와 11억6000만달러 규모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ARV-766과 전임상 개발 중인 ARV-07의 개발 및 상용화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탁의 임상시험은 아비나스 이외에도 사노피가 23억2000만 달러를 투자한 카이메라테라퓨틱스, 최근 머크로부터 7억5600만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한 C4테라퓨틱스 등이 진행 중이다.
TPD신약개발에 대한 국내기업의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법인 연구소인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를 통해 현재 7종의 TPD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대웅제약 동아ST 일동제약도 TPD 신약개발 프로그램을 직접 가동하거나 유빅스테라퓨틱스, 핀테라퓨틱스, 업테라와 같은 국내 신약개발기업과 공동 연구를 통해 TPD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유빅스테라퓨틱스는 국내 최초로 FDA로부터 프로탁 임상시험계획에 대한 승인을 받고 올해 첫 환자 투약을 계획하고 있다.
이외에도 리소좀 기반 TPD 신약개발기업으로 국내에 설립된 오토텍바이오는 중추신경계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TPD 개발을 진행하여 알츠하이머 유발물질 분해제(AB-12)에 대한 국내 임상1상계획을 승인받은 상태다.
◆TPD 신약시장 33억달러 전망 = 아직 TPD를 기반으로 한 의약품이 나오지 않아 신약이 창출될 경우의 시장규모 파악은 확실하지 않으나 글로벌 TPD 시장의 2023~2030년 연평균 성장률은 27%, 시장규모는 2030년 3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TPD 시장은 신약개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속도감 있는 플랫폼 개발과 글로벌 제약회사의 TPD 파이프라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 확대가 성장을 이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글로벌 대형회사들의 신약기술 거래가 중·후기 단계 후보물질에 집중해 위험도 감소를 노리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TPD 기술의 경우 초기 개발단계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TPD를 성공 가능성과 잠재적 이익이 높은 유망 기술로 평가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신약개발 게임체인저 될지 주목 = 신약개발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높은 기대를 받고 있는 TPD 기술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개발 중이다. 프로탁은 표적단백질에 상대적으로 약한 결합력일지라도 결합할 수 있는 분자·이온(리간드)가 확보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표적단백질을 제거하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표적 리간드와 유비퀴틴 결합효소 리간드를 링커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신약화합물보다 상대적으로 분자 크기가 크다.
반면 분자접착제는 프로탁보다 구조가 간단하고 분자 크기가 작아 흡수 확산 공정확립 및 품질관리 등에 있어 프로탁에 비해 약물개발에 상대적인 장점이 크다. 이에 최근에는 프로탁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초기 TPD 투자의 경향이 분자접착제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분자접착제는 특정 표적을 대상으로 설계가 가능한 프로탁에 비해 초기물질 발굴을 위한 설계가 쉽지 않은 단점이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올 후반부터는 기다리고 있던 ARV-110과 ARV-471의 임상 3상 결과를 포함한 많은 TPD 신약의 임상시험 결과가 보고된다”며 “프로탁 분자접착제 오토탁까지 다양하게 변모된 TPD신약의 임상결과가 가시화됨으로써 신약개발의 진정한 게임체인저로서 가치가 확인될 것”을 기대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