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승인권 ‘사각지대’ ② 세수 부족 어떻게 메웠나

‘추경 피하려 편법’…불용·미지급·돌려막기 등 활용

2024-08-22 13:00:09 게재

2013년·2014년 결산 지적사항 무시, ‘재정건전성 지표’ 유지 초점

지방세 미교부 등 불용액 35조원 … 세수 부족 책임, 국민·지방에 전가

기금 목적 외면 … 민주당 “우체국보험적립금 활용, 국가재정법 위반”

대규모 세수 부족에 정부가 편법을 동원해 메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가채무를 늘려야 하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보다는 정부 자체 조율로 ‘재정건전성 지표’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지방교부세나 각종 기금에 지급하기로 한 예산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자비용이 늘어나고 국가채무의 질은 더욱 악화됐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부담을 늘리고 지방에서는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올해도 10조원 이상의 세수 부족현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세수 부족분 해소 방안에 대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22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회계연도 국세수입은 344조1000억원으로 세입예산에 비해 56조4000억원 부족했다. 예산액은 51조8000억원 줄어든 573조9000억원에 그쳤다. 이에 대해 정부는 총지출 규모를 줄여야 했는데 줄어든 규모는 28조원에 그쳤다.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서 대화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김동일 예산실장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일 예산실장(오른쪽)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56조 세수 부족을 28조 지출감소로 메우는 방법 = 정부는 부족한 세수의 절반 수준만 지출을 줄이면 되는 ‘마술’을 사용했다. 가장 먼저 사용한 게 불용액 확대다. 지난해 불용액은 35조2000억원으로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97%대를 유지하던 예산 집행률도 93.9%로 떨어졌다.

불용액 증가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8조6000억원을 교부하지 않는 등 지출계획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또 총지출에는 계상되지 않는 외국환평형기금으로부터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도 활용됐다. 국회 예산정책처 이규민 예산분석관은 “정부는 세수결손에 대응해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미지급, 일반회계의 타 회계·기금에 대한 재정 지원규모 축소, 일반회계의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이자 미지급 등을 통해 지출을 절감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세수 부족 해결책은 이미 국회 결산심사 과정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 시정요구된 사안들이었다.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2013년 이후 10년만이다. 당시 11조원의 세수결손이 나와 정부가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2500억원씩 지급하지 않자 국회는 ‘지방재정의 안정적 운용 필요성을 감안한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이 분석관은 “지방교부세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교부 재원의 비율을 법률로 정하고 있는데, 미지급과 관련된 정부와 지자체간 협의, 미지급 기준 마련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법정배분비율과 다른 교부가 이뤄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2014회계연도 결산 심사때 시정 요구됐던 ‘일반회계의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이자 미지급’ 문제도 다시 활용됐다.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11조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하자 정부는 일반회계의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이자 7조8000억원 중 4조원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반회계 지출규모를 줄였다. 당시 국회는 결산심사를 통해 “세수부족에 대한 원칙적인 해결방안은 세출 구조조정이며, 예수이자 미지급으로 인해 2.548%의 가산이자가 적용돼 향후 재정운용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회 요구를 외면한 채 지난해에도 일반회계의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이자 7조800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미지급액에 대한 가산이자(가산이자율 3.792%)는 추가적 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가 외국환 평형기금의 재원을 세수결손 대응에 활용한 부분도 지적됐다.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이 외국환평형기금에 예탁하는 금액 5조5000억원을 줄이고 외국환평형기금이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 예수한 14조4000억원을 조기에 상환한 다음 공공자금관리기금이 이 중 9조6000억원을 일반회계에 예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일종의 돌려막기다.

외국환평형기금의 재원을 활용한 세입 보전은 금융성 채무가 적자성 채무로 전환돼 국가채무의 질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외환시장의 안정성 확보라는 외국환평형기금의 목적과도 어긋난 집행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국회 예산정책처 “올해도 세수결손 가능성” = 우체국보험적립금의 재원을 정보통신진흥기금에서 차입한 것도 문제되고 있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수입 감소로 재원 보전이 필요해지자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재원 부족으로 정보통신진흥기금에 예탁하기 어려워져 결국 ‘우체국보험적립금 차입’이라는 카드를 사용했지만 불법 논란까지 일고 있다. 민주당은 정보통신진흥기금 수입 부족분 2500억원을 우체국보험적립금에서 빌린 것을 ‘국가재정법’ 위반사례”로 지목했다. 국가재정법 18조와 20조에서는 ‘정부가 국세와 같은 세입을 재원으로 하되 국회가 의결한 금액의 범위 안에서 국채와 차입금을 충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분석관은 “정보통신진흥기금은 2023년도 예산총칙 상 차입을 할 수 있는 기금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의 부자감세와 정책실패로 세수결손이 발생했는데 정부는 책임을 면해 보려고 민주당이 제안한 추경 편성을 거부한 채 세수결손 부담을 지방정부, 교육청, 국민에게 전가했다”면서 “예산 리볼빙으로 국민 부담을 더 키워놨고 국가재정법까지 위반했다”고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과 공공자금관리기금운용계획의 자체변경, 일반회계 전출금 불용 등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을 수 있는 수단을 활용해 세수 결손에 대응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국회가 2023년도 예산안 심의를 통해 확정한 것과 다른 방향의 예산 집행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세수결손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세수부진이 지속될 경우 세수결손의 발생 가능성을 국회에 보고하고 대응방안 마련 시 국회와의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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