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노동정책, 역대 정부 중 ‘최악’ 가능성

2024-08-23 13:00:02 게재

국회노동포럼 출범 … 최초 최저임금 물가보다 낮은 인상률, 최대 임금체불, 비정규직 종합대책 전무

윤석열정부의 2년 노동정책에 대해 직장인들은 낙제점을 줬다. 노동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가 5월 초 발표한 직장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윤 정부의 노동·일자리 정책에 대해 평균 41.1점의 점수를 준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더 혹독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국회노동포럼’ 출범 심포지엄에서 ‘노사관계 평가와 22대 국회의 역할’ 발제를 통해 “최저임금과 임금체불 그리고 사회적 대화와 비정규직 종합 대책 부문이 역대 정부와 비교해 최악의 성과”라면서 “유일한 성과는 역대 최대 고용률 증가인데 고령자의 취업 확대, 시간제의 증가 등 환경적인 측면이 크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윤 정부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로 지난해 3월 ‘주 69시간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했다가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것을 꼽았다. 정 교수는 “정부가 국민이 체감하는 노동관련 감수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 사례”라며 “윤 정부 노동정책은 역대 최하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정책 추진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교섭력에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 사용자는 노동자를 착취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이윤의 재분배도 가능하다. 윤석열정부가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노동포럼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열고 “노동을 한국 정치의 우선순위로 끌어올리고 모든 일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노동체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회노동포럼에는 포럼 대표의원인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연구책임의원인 이용우·신장식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 등 야 4당에서 국회의원 34명이 가입한 상태다. 사진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윤석열정부 이전 최저임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보다 높았다. 1990년 이후 평균 물가상승률은 3.45%인데 비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8.22%로 두배 이상이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 평균보다 2.33~7.72%p 높았다.

반면 윤석열정부 3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은 3.06%로 물가상승률 3.1%에 처음으로 미치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노·사·공익위원 각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한다. 공익위원이 심의촉진 구간, 권고안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고용부 장관이 공익위원 9명 전원을 임명하다 보니 정부의 성향과 정책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다.

정 교수는 “역사적으로 1998년 국제통화기금(MF)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제외하면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면서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적정한 임금을 위해 노력하고 최저임금은 적어도 물가상승률 이상 이어야 하지만 유독 윤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에 야박했다”고 비판했다.

●유독 사용자 불법 앞에 멈춰선 ‘법치주의’ = 임금체불은 윤 정부 집권 2년차인 2023년 1조7845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금체불 규모보다 더 큰 문제는 1인당 체불금액인데 윤 정부 2년 동안 평균 1인당 임금체불액은 608만원이었다. 이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의 1인당 임금체불액인 46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정 교수는 “임금체불액이 커졌다는 것은 임금체불이 소규모 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윤 정부가 강조해 온 법치주의가 유독 사용자의 불법 앞에서는 멈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의 노사관계 특징은 개인수준의 정책보다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다. 지난 3년간 노동정책에 대해 정부는 법치주의를 표방했지만 노조는 반노동정책으로 규정한다.

정 교수는 윤 정부의 대표적인 노사관계 사례로 △화물연대에 대한 긴급업무명령 발동 △건설노조 수사 및 간부 구속 △노조 회계장부 미제출 시 불이익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위반 사업장 조사 등을 꼽았다.

정 교수는 “이전 보수정부와 경영계는 노조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협해 온 이유가 큰 틀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함”이라면서 “윤 정부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가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바퀴와 함께 정부라는 방향키에 의해 유지·발전되는 철학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윤 정부가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노사정 대화에 대한 무관심이다. 집권 3년이 지났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 합의는 아직 1건도 없다.

정 교수는 “윤 정부는 노조가 가진 특별한 기능(고충처리, 사회적 재분배)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국노총과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다”면서 “최근 국회 차원의 사회적 대화가 추진되고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현 정부에서의 사회적 대화가 실효성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21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경사노위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회적 대화체를 정부에 두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면서 “국회가 사회적 대화의 중심으로 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21대 국회에 이어 지난 16일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 정부 최초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연속 두번 행사한 것이다.

정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집단적 노사관계를 통해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법안”이라며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과 교섭이 가능한 비정규직은 사내하청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로, 교섭이 보장된다면 원청기업의 남용이 줄어들고 공정한 계약 관행도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 국회차원 사회적 대화 모색해야 = 윤 정부 들어 감소하던 저임금 노동자 비율(전체 임금근로자수 대비 월임금 중위값의 2/3 미만 임금근로자수)이 2021년 15.6%에서 2023년 16.2%로 다시 늘었다.

정 교수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인데 낮은 최저임금 인상율과 관련돼 있다”면서 “비정규직 정책이 소득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적 정책인데 윤 정부는 역대 정부 중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 없는 유일한 정부”라고 꼬집었다.

다만 총선 패배 이후 정부와 국민의힘이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을 지원·보호하기 위한 가칭 ‘노동약자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 추진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윤 정부 들어 노조조직률이 14.2%에서 13.1%로 줄었다. 정 교수는 “건설노조와 화물연대에 대한 노조 수사와 노조 불인정 등으로 조합원 수가 줄었기 때문”이라면서 “또한 각 업종별 초기업 교섭도 줄어 노조에 가입할 유인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 정부의 유일한 성과로 지난해 고용률은 역대 최고인 62.6%로 꾸준히 늘어났다. 또한 2023년 산재사망자수는 2016명으로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망만인율은 0.98로 전년 1.10보다 다소 낮아졌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고용률 증가는 고령자의 취업 확대, 시간제의 증가 등 환경적인 측면이 크고 산재사망만인율 감소는 산업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 및 문재인정부 시절 추진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제정 등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윤 정부의 노동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집권 후반기에도 외부로부터 강력한 문제제기가 없는 한 정책방향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 등으로 노동정책보다 정치적으로 많은 도전이 예상돼 의미 있는 노동정책이 심도 깊게 다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2대 국회에 일하는 국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지만 오히려 배제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와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법적 구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지속적인 확대, 상병수당 도입 △사회적 수요가 큰 돌봄 노동자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법안, 다단계 하도급을 예방할 수 있는 조선산업기본법,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제시했다.

노동시장 내 소득격차 완화에 대해서는 △지역 비정규노동센터 설립 지원 △저임금법 임금채권보장법 등 정비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초기업교섭 지원을 꼽았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회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적극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노동포럼에서 만난 노·사·정 | 국회의원 연구단체 ‘국회노동포럼’이 20일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포럼 회원들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경총 제공

●경제활동인구 2828만명 중 불안전 노동 1810만명 =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불평등한 조각난 일터: 22대 국회 노동입법 과제와 정책과제 모색’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소장은 “1953년 이후 고용관계가 매우 다변화되면서 경제활동인구 2828만명 가운데 파견·간접고용 등 963만명의 사각지대 노동과 특수형태근로·플랫폼 종사자 등 847만명의 제도 밖 노동을 포함해 불안전 노동 1810만명이 발생했다”면서 “여기에 불평등, 노동시간 단축 등 묵은 과제들도 풀어나가야 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동기본권이 실현될 수 있게 국회노동포럼이 구체적, 실질적인 노력을 추진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은 22대 국회 주요입법과제를 진단하면서 “국회가 법안 발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토론과 협상으로 쟁점법안에서 진전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은 “윤 정부는 선택적 법치주의, 노조 혐오와 무노조 지향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남성-여성 소득격차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도 “현 정부는 시대착오적 노조탄압, 시행령 통치 등으로 심각한 노동정책 퇴행을 지속하고 있다”며 “국회가 노동·시민단체와 상설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대전환을 위한 입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윤 정부 들어 산업현장 노사 법치주의 확립은 큰 성과”라며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노동규범 현대화 등은 노동계의 반대로 지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노동개혁정책관은 “정부에서도 복잡한 문제들에 대응하고자 다양한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다”며 “진척이 덜 된 부분도 노사간에 사회적 대화가 계속되면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지점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