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논란 자초 윤석열정부, 곳곳 지뢰밭
광복회 조사·공법단체 추가 등
‘국정교과서 강행’ 박근혜 탄핵
건국절 논란 MB ‘중도실용’ 선회
광복절을 기점으로 불붙은 윤석열 정부 친일·역사관 논란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권 후반기 내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지세가 탄탄했던 역대 정권도 가치관 논란 앞에서 여론을 도외시하다 쓴맛을 본 전례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선 논란을 진화하는 데 실패한 윤석열정부는 사상 초유의 ‘반쪽 광복절’ 이후 광복회 압박 카드를 하나 둘 꺼내들기 시작했다. 건국절 추진을 한 적이 없는데 광복회가 거듭 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인사권을 부정한 데 대한 노여움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광복회를 겨냥해 감사를 염두에 둔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독립분야 공법단체 추가 지정을 검토 중이다.
국가보훈부는 15일 광복회 주관 광복절 기념식에서 축사를 맡은 김갑년 광복회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이 ‘대통령 퇴진’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광복회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치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이유다.
보훈부는 또 22일 현재 광복회가 유일한 독립분야 공법단체를 추가로 지정하는 방안을 계속 검토해왔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법 개정 사안인 만큼 대통령실에서 바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독립운동과 광복의 주체가 광복회 혼자만이 아니다”라는 입장으로 보훈부에 힘을 싣고 있다. 공법단체 추가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나 광복회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현 시점에 이를 검토하는 것은 광복회 흔들기로 읽힐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광복회를 기점으로 독립운동기념 사업 단체들을 분열·관리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0일 관보게재를 앞둔 새 역사교과서 검정결과도 역사전쟁 재점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새 역사교과서에 1948년 8월 15일의 의미가 어떻게 기술될지부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자유민주주의, 홍범도 장군 등 쟁점이 수두룩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광복과 독립의 개념 확장을 시도해 왔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왔고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극찬하기도 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오비이락 격으로 곳곳에서 독도 조형물이 사라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22일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기념관 내 6.25전쟁실 앞 복도에 있던 독도 조형물이 지난 6월쯤 철거됐다. 이 조형물은 2012년경 기념관이 기증받아 12년간 전시해왔으나 낡아서 수장고에 넣어놨다는 게 기념관 측 설명이다.
앞서 서울교통공사도 지하철3호선 안국역 역사와 2호선 잠실역, 5호선 광화문역 내 독도조형물을 승객 이동 방해를 이유로 철거했다.
9월 초로 점쳐지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여부, 1주년을 맞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악재가 될 수 있다.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소장은 “지지율이 뒷받침되던 역대 정부에서도 이념·역사논란과 관련해서 독선적인 행태를 보이다 실패한 사례들이 있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건국절 논란을 키웠다 지지도가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중도실용’으로 선회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낮은 지지율로 같은 논란에 불을 지피는 것은 자충수”라고 덧붙였다.
이재걸·정재철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