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폭염은 기후재해, 건강대책이 필요하다

2024-08-26 13:00:01 게재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긴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열대야는 야간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날을 말한다. 올해는 열대야가 가장 빨리 6월에 시작된 특별한 기록 경신을 한 해이기도 하다. 또한 관측기온이 33℃ 이상이면 폭염이라고 한다. 2018년 폭염일수가 31일이었다. 현재의 폭염 추이를 볼 때 2024년 올해 이 폭염일수 기록을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가장 더운 날들을 살고 있는 셈이다.

폭염일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우리나라에서 ‘폭염 살인’으로 번역돼 출간된 책의 원래 제목은 ‘열이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였다. 이 섬뜩한 제목의 책을 집필한 미국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은 폭염의 영향을 강렬히 전하기 위해 이 제목을 잡은 게 아니다.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사실을 전하기 위한 제목이었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한 죽음이나 손상 손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온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은 살고 온도가 주는 영향에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온도지능’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폭염 속에서도 쾌적한 삶을 누리는 계층과 폭염 속에서 일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격차, ‘삶의 온도 격차’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가 지금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데이터가 전해주고 있는 폭염살인은 어떤 상태일까?

폭염일수 늘수록 기저질환자 위험

서울시 건강 빅데이터를 분석한 와이즈라는 팀의 폭염일수에 따른 질병 발생의 양상을 살펴보자. 폭염이 지속되면 일단 감염병이 늘어난다. 폭염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들고 식중독을 유발해서 장염을 발생시킨다. 몸이 허약한 노인들은 더위에 장염까지 생기면서 패혈증이나 전해질 이상, 그리고 면역상태의 악화로 사망한다.

두번째 당뇨병 환자들의 건강상태가 악화된다. 더워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당뇨가 악화되고 철철 흐른 땀이 몸의 대사상태를 불안정하게 하는 동안 대사조절과 당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세번째 빈혈의 악화다. 폭염으로 인해 탈수가 일어나면서 용혈성 빈혈이 증가하고 혈류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면서 어지럼증이나 빈혈을 경험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가장 폭염일수와 깊은 연관성을 보인 데이터는 빈혈이라고 한다.

네번째로 피부가 넓어지고 모세혈관이 확장되면서 혈류 순환과정 중 심장이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된다. 이같은 심장질환의 악화도 폭염과 관련된 중요 사망 이유라고 한다. 미국 심장학회는 기온이 32℃ 이상이면 뇌졸중은 평소보다 66%, 관상동맥 관련 질환은 20% 가량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체온이 1℃ 오를 때마다 심장의 1분당 혈액 방출량은 3리터씩 증가하므로 심장의 부담은 폭염 속에서 엄청나게 커진다. 실제로 28℃에서부터 기온이 1℃씩 상승하면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급성심정지’ 발생도 1.3%씩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신질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온열질환의 흔한 희생자 중 하나가 노인이다. 그 중 치매노인이 가장 위험한 그룹이다. 폭염의 온도를 지각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냉방기구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진 치매 노인 환자가 폭염 피해의 사망자가 된다.

또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도 온열질환의 고위험군이다. 땀을 많이 흘리면서 약이 배출되기도 하고 약의 농도가 높아지기도 하는 체내 약물 대사작용이 달라져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강화되기도 한다.

치매·정신질환자 특히 건강악화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 호 교수팀은 2003년에서 2013년까지 10년의 폭염과 정신질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폭염일 때 응급실 내원이 15% 늘고 불안증 31.6%, 치매 20.5%, 조현병 19.2%, 우울증 11.6%의 순으로 관련성 높은 내원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임계온도가 33.1℃인 경우 정신질환 관련 병원 입원 위험이 최대 26.6%까지 높아진다는 보고도 나온 바 있다.

폭염에 지나치게 노출돼 체온조절의 한계점을 초과하면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증가되고 체온조절 중추에 이상이 오면서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폭염은 공격성을 증가시켜 범죄를 증가시키고 자살 또한 증가시키는 심각성이 있어 정신건강 관련된 더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태다.

다행히 폭염은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에 국가의 기후재해로 인정됐다. 지금 바로 재해기간이다. 재해기간 국가가 책임있는 건강정책과 관리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