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전 임원에 57억원 지급해야
스톡옵션 1심 패소 뒤 강제집행 불응 … 압류되자 소송
대법 “금전 채권 이미 확정” … 스톡옵션 분쟁 새 기준
신라젠이 퇴직한 전 임원에게 수십억원에 이르는 스톡옵션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이번 판결은 회사가 약속한 주식을 줄 수 없게 된 경우, 그 대신 돈으로 보상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전자증권 제도 도입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법적 분쟁 사례들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신라젠이 전 임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이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신라젠은 지난 2016년 주주총회를 열고 전무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A씨에게 약 7만5000주를 4500원(액면가 500원)에 매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듬해 신라젠은 A씨에게 임원 고용 및 연봉계약 만료를 통보했고, 이사회 결의를 통해 A씨의 주식매수청구권 부여도 취소한다고 통지했다.
이에 반발한 A씨가 낸 앞선 소송에서 1심 법원은 2018년 9월 신라젠이 행사가에 해당하는 3억3750만원을 A씨로부터 받고 7만5000주를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신라젠의 주가는 주당 10만원대를 오갔다.
항소심은 강제집행이 불가능(불능)하다면 신라젠이 A씨에게 현금으로 57억여원(변론종결 시점의 주가 상당액·약 7만6000원)을 지급하라는 예비적 판결을 했고, 이는 2019년 9월 확정됐다. 확정판결 당시 주가는 1만원대까지 떨어졌다.
3억3750만원을 공탁했던 A씨는 이후 주식 강제집행에 나섰지만, 신라젠이 줄 수 없다고 버티자 예비적 판결로 나온 57억여원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 법원 인용 결정)를 밟았다.
신라젠은 그제야 주식 7만5000주를 A씨 앞으로 변제공탁한 뒤, 강제집행에 이의가 있다며 이번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선 전자증권법이 쟁점이 됐다. 2019년 전자증권법 시행으로 실물주권의 효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라젠은 재판에서 전자증권법으로 인해 주권 인도 청구에 관한 판결이 집행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회사 측이 판결 이행을 위해 전자등록한 주권을 공탁해 A씨의 청구권 자체가 소멸됐다고 했다.
그러나 1·2심은 신라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자증권법 시행 여부와 관계 없이 신라젠이 적법한 강제집행을 거부해 A씨에게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주권 인도 집행이 불능으로 되면서 피고의 금전채권(57억여원)은 확정적으로 발생했다”며 “이후 주권을 공탁했다는 사정만으로 이미 발생한 피고의 금전채권이 소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은 전자등록법 시행 전에 확정됐다”며 “원고는 판결이 확정된 이후 즉시 주권을 발행해 피고에게 인도했어야 했음에도 신주를 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강제집행이 적법하게 개시됐으며, 강제집행 당시 원고가 주권을 보유하지 않아 집행관이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것은 집행불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전자증권법의 시행으로 원고가 실물주권을 발행할 수 없게 되었더라도 이는 원고가 주권 인도의무의 이행을 지체해 발생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라며 “원고가 피고 앞으로 그 주권의 전자등록증명서를 공탁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의 금전채권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3억3750만원을 받고 주식 7만5000주를 주는 스톡옵션을 이행했다면 끝났을 사안에 6년 넘는 법정 공방을 벌인 신라젠에게는 57억여원의 예금 채권 압류와 추심 명령이 남게 됐다. 현재 신라젠의 1주당 주가는 3000원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