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계열사간 합병과 기업가치 밸류업

2024-08-27 13:00:04 게재

최근 SK그룹과 두산그룹은 사업구조조정을 위해 계열사간 분할 및 합병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 합병에 대한 자본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미국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주회사인 알파벳만 상장되어 있다. 구글은 알파벳이 100% 보유한 비상장기업이다. 따라서 알파벳이 사업구조조정을 위해 계열사간 분할합병을 하더라도 주주가치의 변화는 없다.

반면 우리나라 대기업은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상장된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지분율이 높지 않다.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재편을 위해 계열사간 분할 및 합병을 하는 경우 합병비율에 따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충돌될 수 있다. 지배주주 입장에서 자신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의 기업가치는 높게 평가하고 지분율이 낮은 계열사의 기업가치는 낮게 평가할 유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계열사간 합병과정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 충돌

SK그룹은 배터리 사업을 하는 SK온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현금흐름이 좋은 SK E&S와 SK온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SK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 지분을 36%, 비상장사인 SK E&S 지분은 90%를 보유하고 있다. 지주회사는 SK E&S의 가치는 높게 SK이노베이션의 가치는 낮게 평가할 유인이 있다.

일반주주들은 SK이노베이션의 주당순자산가치(PBR)가 0.5로 순자산이 시가총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저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시장법상 상장기업간 합병비율은 원칙적으로 기준시가를 적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기준시가가 순자산가치보다 낮은 경우 순자산가치를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순자산가치가 아닌 기준시가를 적용해 합병비율을 산정했다.

두산그룹도 유사한 상황이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인적분할된 두산밥캣을 인수한 후 상장폐지해 완전자회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지주회사인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을 30%,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68% 보유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인수하면 ㈜두산은 수익성이 좋은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고 더 많은 배당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두산밥캣의 주가순자산비율이 0.8에 불과한 데 반해 두산로보틱스는 지속적인 영업적자에도 불구하고 주가순자산비율이 11이 넘을 정도로 주가가 높다. 일반주주들은 두산로보틱스에 비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합병비율 산정시 지배주주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일반주주들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

상장사간 합병비율은 원칙적으로 기준시가로 산정하나 계열사간 합병인 경우 10% 범위 내에서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산은 합병비율 산정시 별도의 조정을 하지 않았다.

일반주주의 이해관계 충분히 반영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경영진은 사업구조개편이 중장기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된다면 자본시장의 투자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사회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합병비율과 합병시점 선정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주가가 항상 기업의 본질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시점에 합병을 하면 일반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

기업가치 밸류업을 위해서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도 필요하지만 계열사간 합병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기업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해줘야 밸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 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