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압수자 참여없이 유류물 압수 가능”
2심, 징역 1년 집유 2년 … 대법, 파기 환송
“권리 포기 인정되면 참여권 보장 필요 없어”
수사기관이 범죄 현장을 압수수색할 때 정보저장매체를 소지하던 사람이 그에 관한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참여권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제작·배포 등),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7~2019년 여성 청소년과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한 혐의, 성관계하는 장면을 불법 촬영하고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A씨가 여성들의 치마 입은 모습 등을 불법 촬영했다는 제보를 받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그의 PC에 저장된 파일을 압수했다.
A씨는 압수수색 직전 신발주머니에 파일 저장매체인 SSD 카드를 담아 집 밖으로 던졌다. 경찰이 우연히 이를 발견했으나 A씨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자 경찰관은 유류물로 보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영장없이 압수했다.
A씨의 PC와 SSD 카드에서는 제보 내용 외에도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여성들의 나체나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 등이 발견됐다. 검찰은 이 영상들을 증거로 삼아 A씨를 재판에 넘겼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A씨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그가 은닉한 저장매체를 유류물로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해당 저장매체에 대해 참여권 보장없이 행한 압수수색의 적법 여부였다.
유류물 압수는 수사기관이 소유권이나 관리처분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했지만 적법하게 포기된 물건, 또는 그와 같은 외관을 가진 물건 등(유류물)의 점유를 수사상 필요에 따라 취득하는 수사방법을 말한다.
1심 법원은 증거 능력을 인정해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A씨의 청소년 성매매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PC와 SSD 카드에서 나온 것들을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PC파일을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는 기소된 범행과 영장 기재 범죄사실 사이에 객관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SSD 카드를 유류물로 보고 압수한 것은 위법하지 않으나, 피고인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고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없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SSD 카드는 유류품이므로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고 영장 발부 범죄와 무관한 내용을 압수했더라도 위법이 아니라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정보저장매체를 소지하던 사람이 그에 관한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압수할 때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압수의 대상이나 범위가 한정된다거나 참여권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A씨를 비롯해 누구도 신발주머니 속 SSD 카드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으므로 참여권을 행사할 피압수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제출자가 존재하는 임의제출과 달리 압수의 범위를 한정하기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다만 대법원은 경찰이 새로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임의로 압수한 PC 파일에 관해서는 2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