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역생존전략 다시 수립해야
지역소멸이 가시화되면서 지역발전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행정통합이나 메가시티 추진 움직임이 그렇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초광역권’ 제안도 그런 흐름의 하나다. 이는 중앙정부 주도형 나눠먹기식 균형개발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에 기초한다. 거점개발과 균형개발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지역에 실질적 권한을 주는 지역주도형 개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균형개발 내걸었지만 수도권과 지역간 격차 더 심화
과거 우리나라의 지역개발은 거점개발로 시작됐다. 지역개발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거점개발방식이 적용됐다. 거점개발은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성장거점지역을 선정해 집중 개발함과 동시에 개발효과가 주변지역으로 파급되기를 기대하는 방식이다.
당시 정부는 수출주도형 공업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 경부 축을 중심으로 수도권과 영남지역에 다수의 공업단지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낙수효과’는 없었고, 수도권과 영남지역에 인구와 산업이 집중돼 나머지 지역과 격차가 심화되는 문제를 낳았다.
이후 지역개발방식은 균형개발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균형개발은 국토의 낙후된 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해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방식이다. 균형개발이 시작된 시점은 1992년부터 진행된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부터다.
노무현정부부터 윤석열정부까지 역대 정부는 모두 균형개발을 지역발전전략으로 내세웠다. 특히 노무현정부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국정운영원리로 삼았다. 이 시기에 균형발전위원회가 설치되고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혁신도시 등 공공기관 이전은 지금도 성과로 남았다.
이명박정부는 핵심 국정과제로 ‘5+2 광역경제권’을 지역경제 활성화방안으로 채택한다. 광역경제권은 2개 이상의 광역단체를 포괄해 균형발전뿐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추구했다. 인구 500만 이상의 수도권, 충청권, 대경권, 동남권 등은 광역경제권으로 강원권, 제주권 등은 특별경제권으로 구분했다. 중앙정부가 주도해 권역별로 구체적인 발전계획도 세웠지만 지방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서 실패한 정책이 됐다.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 또한 균형발전을 얘기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절은 노무현정부 2기 수준의 균형발전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수도권 집중만 심화시킨 것으로 기억된다.
역대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지금 지방은 인구를 수도권에 빼앗겨 소멸위기에 놓였고, 수도권 일극체제가 완성됐다. 경부 축과 다른 지역 간 격차가 문제가 된 거점개발시대와 달리 균형개발시절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심해졌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나눠먹기식 균형발전을 주도한 것”이 실패한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역대 정부의 개발방식이 하향식이어서 지역 내부의 합의 부족으로 추진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지자체 스스로 메가시티나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지역간 이해관계가 달라 무산위기에 놓였고, 부울경 메가시티는 2022년 특별연합이 무산되면서 동력을 잃어 지방소멸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수도권 초광역경제와 지역주도 충족하는 제3의 길은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선 거점개발과 균형개발이 아닌 제3의 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제3의 길은 비수도권 초광역경제와 지역주도라는 두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최근 부산에서 발표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4개 강소국 프로젝트’도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4개 강소국 프로젝트’는 이명박정부의 ‘5+2 프로젝트’와 유사하지만 중앙의 인적자원과 재정·행정적 권한을 대거 지방으로 넘기는 지역주도형이라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요즘은 국가발전에 관한 담론이 사라진 시대이지만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지역생존정책이라면 담론이 되기에 충분하다. 인구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흩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추진해야 할 때다. 지역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처럼 ‘부산민국’ ‘광주민국’이 만들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