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자산불평등
순자산 5분위 격차, 8년새<2014~2022년> 93배에서 140배로 커져
“자산불평등 원인, 부동산 투기 통한 불로소득” … 20대 가구, 서울 아파트 구입 저축기간 40년에서 88년으로 늘어
2021년 서울연구원의 서울 청년 불평등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의 심각성을 영역별로 질문한 결과 청년들 89.1%가 ‘자산 불평등’을 꼽았다. 이어 소득(85.4%), 주거(82.0%), 고용(75.8%), 교육(59.8%), 가족형성(52.6%) 등 순으로 답했다.
한 사회의 빈부격차와 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 추이를 보면 청년세대의 자산 불평등에 대한 심각한 우려는 사실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다는 의미다.
2022년 기준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396인데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지니계수는 0.606으로 나타났다.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 특히 순자산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2022년 기준 실물자산 비중이 77.9%에 달하고 그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94.6%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가구의 재무적 특성을 고려하면 자산 불평등 심화의 주된 요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28일 ‘자산 불평등 심화 실태 및 주요 요인 분석’ 워킹페이퍼를 발행했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매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활용해 주택가격 급등 시기(2014~2022년)를 ‘순자산 5분위 재무·자산 유형별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자산은 금융자산(저축액+현거주지 전월세보증금)과 실물자산(부동산+기타 실물자산)으로 구분한다.
이한진 연구위원은 “자산 불평등 확대의 주요 요인은 노동소득이 아닌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이었고 금융이용 기회의 불평등 또한 자산 불평등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 증액을 10분위 가구, 5분위 가구, 광역자치단체별로 분석해본 결과 모두 자산 불평등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에서 돈이 부자들에게, 서울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주택가격 급등으로 순자산 상위 10%인 10분위 가구의 2022년 기준 순자산액은 19억6226만원으로 2014년 11억 9133만원 대비 7억7093만원 늘었다. 반면 순자산 하위 10%인 1분위 가구는 같은 기간 순자산액이 적자 상태였다. 2022년 순자산은 903만원으로 2014년(556만원) 대비 347만원 더 줄면서 오히려 적자 규모가 커졌다.
10분위 가구 순자산 순증액 비중을 100으로 두고 다른 분위 가구와 비교한 결과, 1분위 -0.45%, 2분위 0.73%, 3분 2.61%, 4분위 5.60%, 5분위 9.48% 등으로 하위 50% 가구의 순자산 증가 폭은 10분위 가구와 비교할 때 매우 열악했다. 차상위 9분위 가구(48.58%)의 순증액 또한 10분위 순증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불평등보다 자산불평등이 더 심각 = 순자산 5분위별 순자산 변화도 순자산 10분위별 분석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2014년 대비 2022년 5분위별 순자산 순증액을 보면 1분위 106만원, 2분위 3166만원, 3분위 9176만원, 4분위 2억832만원, 5분위 5억7282만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비교에서 소득 증가율은 1분위 48.08%, 2분위 40.38%로, 4분위(35.41%), 5분위(38.12%) 가구 소득증가율보다 더 높았다. 하지만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간 순자산 격차는 2014년 8억3304만원에서 2022년 14억480만원으로 확대됐다. 순자산 5분위 배율(5분위/ 1분위) 또한 2014년 93.2배에서 2022년 140.2배로 커졌다.
5분위별 순자산 순증액에서 부동산 순증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5분위(103.0%), 4분위(97.2%) 등으로 순자산 상위 분위의 경우 부동산 순증액이 순자산 순증액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3분위(79.2%), 2분위(62.9%) 등 하위 분위로 갈수록 부동산 증가가 순자산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다. 1분위 가구의 2022년 부동산 자산 규모는 오히려 2014년보다 감소했다. 부동산 가격 변화가 자산 불평등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소득이 자산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순자산 증대 효과는 기존 자산 보유 규모가 큰 상위 분위일수록 순자산이 더 많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주택가격 급등으로 광역자치단체별 자산 불평등도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대비 2022년 전국 평균 순자산 증가율(순증액)은 65.90%(1억8114만원)다. 수도권은 77.07%(2억5070만원)으로 비수도권 49.11%(1억1242만원)보다 순자산이 크게 늘면서 비수도권과의 격차가 확대됐다.
순증액은 서울이 3억1877만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제주 2억8388만원, 경기 2억1375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경북 5146만원, 충북 4707만원, 충남 3452만원 늘며 시도별 자산 불평등도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인 아니지만 금융이용 기회의 불평등도 한몫 = 보고서는 부동산 가격 변화처럼 자산 불평등 확대의 주된 요인은 아닐지라도 금융이용 기회의 불평등 또한 자산 불평등 확대의 원인 중 하나라고 꼽았다.
금융기관의 특성상 보유 자산이 많고 소득이 높을수록 금융이용 기회는 늘어나고 비용 또한 절감할 수 있다. 또 담보 제공 여부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 및 대출이율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 연구위원은 “상위 분위는 상대적으로 담보대출을 주로 활용했지만 1분위 가구는 고비용의 신용대출 이용 비중이 높았다”면서 “거주 목적이든 투기적 목적이든 소득과 자산이 많을수록 저비용으로 부채를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어 금융이용 기회의 불평등은 자산 불평등에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의 축적수단된 부동산 현실 개혁해야” =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며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세보증금이 크게 늘면서 하위분위의 주거부담은 가중됐다.
순자산 5분위 중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전월세보증금은 2014년 943만원에서 2022년 1686만원으로 78.8%(743만원)나 늘었다. 전월세보증금 보유 가구 비율 또한 같은 기간 65.5%에서 71.3%로 5.8%p 늘었다.
주택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가구 저축가능액으로 주택 구입에 소요되는 기간 또한 크게 늘었다. 2014년 기준 서울에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32.2년을 저축해야 했지만 2022년에는 52.4년을 모아야 했다. 이는 당해 연평균 매매가격을 당해 전체 가구 평균 저축가능액으로 나눈 값이다.
특히 소득기반이 취약한 29세 이하 청년 가구의 경우 저축가능액으로 서울 아파트 구입에 소요되는 기간은 같은 비교에서 39.5년에서 87.9년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 연구위원은 자산불평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거 수단으로서의 주택이 부의 축적 수단으로 전락된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관련 세제를 전면 개편해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창출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만들고, 중장기적으로는 부동산을 사회적 공공재로 재정립함으로써 주택 건설 및 공급을 민간이 아닌 공공부문이 담당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는 “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은행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회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의 작동 결과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