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해야”

2024-08-30 13:00:30 게재

헌재, 탄소중립법 8조 1항 ‘헌법불합치’ 결정

과소보호금지 원칙 위반, 기본권 침해에 해당

“2026년 2월 28일까지 법 개정 때까지 유효”

정부가 2031년 이후 2049년까지 구체적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법이 헌법에 어긋난다(헌법불합치)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국민의 기본권(환경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판단이다.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부족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나온 결정이다.

헌법재판소(이종석 소장)는 29일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심판대에 오른 것은 한국 정부가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정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가 적정한지다.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구체적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탄소중립법 8조 1항은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시행령 3조 1항은 그 비율을 ‘40%’로 정했다.

같은 법에는 2050년에까지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적혀있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 간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과소보호금지원칙 및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법익 보호를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하고 법률유보 원칙은 일정한 행정권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헌재는 탄소중립을 ‘어떻게’ 달성할지 손에 잡히는 계획이 없어 미래 세대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우면서도 2031년 이후 대강의 목표치도 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상 주요 기본권인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헌법 전문에서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하는바 국가가 기후 위기의 위험 상황에 대응하는 보호조치를 마련함에 있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미래 국민의 자유 보장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평등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 시한까지 헌재 취지를 반영해 보다 강화된 기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하도록 한 같은 법 시행령 3조 1항에 대해서는 기각(합헌) 결정했다.

재판부는 “시행령은 중장기 감축목표의 구체적인 비율의 수치를 정한 것일 뿐”이라며 이것 자체로 현재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 목표조차 없으면) 그나마 존재하는 정량적인 중간 목표마저 사라지므로, 오히려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후퇴하는 더욱 위헌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재의 이날 결정에 대해 환경단체와 민변 등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도 환영했다. 또 정부와 국회는 헌재 결정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탄소중립기본법에 장기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라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30일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송 위원장 명의 성명에서는 “헌재 결정은 국가의 불충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S) 설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유의미한 결정”이라며 “정부는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선진국으로 책임있는 감축목표를 설정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선일·오승완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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