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 깨웠다
정부·여당, 국회 논의 제안 … 지난해 허위 영상물 피의자 76%가 10대
여성의 얼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청소년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알려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가해자 일부가 촉법소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9일 딥페이크 성범죄물이 청소년을 중심으로 확산한 것과 관련해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문제도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딥페이크 사태 관련 정부 보고를 받고 한 시간 정도 심도있는 토론을 했는데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국회 들어서 지난 국회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같은 국민 여망이 큰 제도도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촉법소년은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을 말하며, 형사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범죄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고 보호처분 대상이 된다.
◆딥페이크가 놀이문화화 = 딥페이크 성범죄에서 10대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최근 일부 사건에서 가해자 중 촉법소년 존재가 확인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에 요청해 공개한 ‘딥페이크 범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허위영상물 피의자 120명 중엔 10대가 91명(75.8%)이었다. 2022년에도 10대 피의자가 61%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1~7월도 73.6%로 역시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10대 비중이 높은 원인으로 이들 사이에서 딥페이크가 놀이문화처럼 자리잡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이런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2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확산 및 재생산 원인’을 묻는 질문에 청소년들은 △처벌이 약해서(26.1%) △인터넷의 익명성 때문에 붙잡힐 염려가 없어서(22.3%)를 가장 많이 꼽았다.
◆교육당국도 “엄벌” = 상황이 심각해지자 교육당국도 엄격한 처벌을 강조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딥페이크 가해자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징계 수위와 관련해 “딥페이크 특성상 아주 고의적이고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아 처벌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폭력 처벌 수위는 학폭위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고, 학폭위는 지속성, 고의성, 피해 크기, 피해 회복 여부 등을 본다”고 말했다.학폭위 조치는 1호(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부터 2호(피해 학생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3호(학교 봉사), 4호(사회 봉사), 5호(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 정지), 7호(학급 교체), 8호(전학), 9호(퇴학)에 이른다.
딥페이크처럼 고의적이고 피해가 큰 학교폭력의 경우 퇴학까지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선 전학이 최대 징계다.최근 알려진 딥페이크 가해자 일부가 촉법 소년이어서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에 교육부 관계자는 “학계 입장이 다르고 일반적인 국민 정서가 다를 수 있어 늘 고민하는 영역”이라며 “이번 기회에 그 부분까지 논의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 나서라” = 이런 가운데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비판과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여성회 등 여성단체와 서울지역 대학 인권동아리들은 29일 오후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느 누구도 우리를 감히 ‘능욕’할 수 없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당장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정부와 국회가 그간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에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부회장은 “‘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느냐”며 “사이버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며 제대로 다루지 않다가 분노가 일어나면 겨우 미온책이나 발표해왔던 정부와 정치권이 이 사건의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을 구성하고 30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강남역에 모여 여성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어 말하기’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오전에는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대학생 연합단체들이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는 물리적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낮다”며 “솜방망이 처벌로 여성의 피해를 무시한 입법기관은 반성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국가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밝혔다.
◆국조실에 ‘딥페이크TF’ 설치 = 한편 정부도 이번에는 강도 높게 대응해 딥페이크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딥페이크 영상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팀을 국무조정실 산하에 설치해 30일 오후 첫 회의를 연다. 김종문 조실 1차장이 이를 이끄는 딥페이크TF는 각 부처마다 제각각인 대응방안을 조정,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 최대 징역 5년인 ‘허위 영상물’ 유포 형량을 ‘불법 촬영물’과 동일하게 최대 징역 7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29일 전국 일선 검찰청의 디지털 성범죄 전담 검사들과 화상 회의를 열고 허위 영상물 제작·배포 등 디지털 성범죄에 엄정하게 대응하고 피해자 보호·지원에도 전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내년 3월 31일까지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도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단속을 벌여 딥페이크 제작부터 유포까지 철저히 추적·검거할 계획이다. 또 딥페이크 탐지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분석, 국제공조 등 수사에 필요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장세풍 김형선 김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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