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처방의 악순환’을 경계하자

2024-09-02 13:00:03 게재

김 할머니는 최근 부쩍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특히 기침을 하거나 웃을 때에 소변이 새는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나이 들면 요실금이 찾아온다더니 싶어 비뇨기과를 방문해 요실금 치료제인 항콜린약을 처방받았다.

이 약은 방광의 용적을 늘리고 근육경련을 줄여 요실금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항콜린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시야가 흐려지거나 입이 마르고 변비가 올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 할머니는 약을 복용하면서 눈이 침침해지고 입이 마르며 변비까지 생겼다.

이런 증상을 노화로 인한 것이려니 여기고 할머니는 안과에서 인공눈물을 처방받았고 내과에서 입마름 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국을 들러 변비약도 구입했다. 그런데 입마름 완화제를 계속 복용하다보니 그 부작용으로 발진이 생겨 피부과를 방문했다. 피부과에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김 할머니는 요실금을 치료받기 시작하면서 병원을 세 군데 방문했고 네 가지 약을 추가로 복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항히스타민제 역시 항콜린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한 할머니는 병원과 약국을 번갈아 방문하며 약을 복용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여러 약복용 시 처방약봉투 약사에게

요실금 치료를 위해 시작한 약 복용의 부작용으로 다른 질환을 유발하고, 그 질환을 또 치료하기 위한 약물의 부작용으로 또 다른 실환을 유발하는 것을 학술적으로 ‘처방의 악순환(Prescribing Cascade)’이라 한다.

만약 김 할머니가 모든 약을 하나의 약국에서 조제받았다면, 약사는 항콜린 부작용을 인지하고 부작용이 적은 다른 요실금 치료제를 추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약사의 현명한 투약과 상담이 ‘처방의 악순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의사들끼리 서로 다른 병원에서 처방한 내용을 공유할 수 없고, 약사들 간에도 다른 약국에서 조제한 내역을 공유할 수 없다. 다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를 통해 약물들 간의 중복과 부작용을 제어하는 기능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제한적이고 활용도가 높지 않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내년에는 고령화율이 20%가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2022년 국민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9.7%에 달해 OECD 평균을 넘어섰다.

국민의료비의 42%가 노인의료비로 사용되며 그 중 42%가 노인의 약제비에 해당된다. 심각한 것은 50년 후에 2명 중 1명이 노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노인 10명 중 9명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평균 2.6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약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하고 부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약을 추가로 복용하는 ‘처방의 악순환’을 예방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료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골의사와 단골약국을 정해 방문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3개월 간의 처방약 봉투를 의사나 약사에게 보여줘 약물을 검토받는 게 필요하다. 혹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를 이용하면 최근 1년간의 의약품 투약 내용, 알러지, 부작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의사와 약사는 투약 이력을 조회해 약물의 상호작용 여부를 검토하고,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약을 처방받는 ‘처방의 악순환’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약사회 공동으로 시행하는 다제약물관리사업으로 만성질환으로 10개 이상의 약을 2개월 이상 복용하는 경우에 자문 약사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해 필요한 약만 복용하도록 하는 서비스가 있다.

약 복용 후 다른 증상, 부작용 의심

결론적으로 ‘처방의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 복용 후 새로운 증상이 발현되면 약 복용에 따른 이상반응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특히 여러 종류의 약을 다량 복용하는 경우에는 부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사와 약사 간에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하다. 약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이상반응 위험은 더 높아지며 환자의 삶의 질은 저하되므로 약의 부작용을 모르고 또 다른 약을 추가하는 ‘처방의 악순환’을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

김예지 연세대 약학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