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글로벌500대 기업' 변천의 경고

2024-09-02 13:00:04 게재

미국 경제 월간지 포춘(Fortune)의 2023년 ‘글로벌 500대 기업’ 현황이 최근 발표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기업이 중국기업보다 많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은 139개사, 중국기업은 128개사로 미국이 11개 더 많다. 일견 당연한 것 같지만 지난 2019년부터 3년간 연속해서 중국기업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역전당한 미국은 대규모 경제부양과 인공지능(AI) 기술 돌파를 통해 2022년 중국보다 1개 많은 수준으로 가까스로 재역전했다. 2023년 10개사 이상 큰 차이를 벌린 성과로 미국은 ‘저승 갔다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1라운드 역전승한 미국, 중국의 혁신경쟁 리턴매치에 직면

미국 재역전 성공의 일등공신은 미중 패권경쟁을 주도한 미국정부다. 1994년 글로벌 기업을 처음 신고한 중국은 파죽지세로 기업수를 늘리다가 사상 처음으로 2022, 2023년 연속으로 글로벌 기업수가 줄었다. 이러한 이례적 현상은 미국이 패권경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중경쟁의 향배 전망에서 일본의 도전 사례가 주목받는데 일본의 글로벌 기업수 변화는 가히 충격적이다. 1980년대 미국의 산업 주도권을 위협한 일본은 1994년 글로벌 기업수 149개를 기록하여 미국과 동수를 이루었으나 급격한 퇴조 양상을 보이면서 현재는 40개로 쪼그라들었다.

일본경제의 충격적인 쇠락 이면에는 미국정부 역할이 있다. 미국정부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엔화가치를 급격하게 상승하도록 압박하고 미일 반도체 협정 등 통상압력을 전방위적으로 행사하여 일본의 글로벌 전략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성장모델의 작동이 어려워진 가운데 일본정부는 경제버블 대응과 과감한 구조조정에 실패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중국도 미국의 전방위 공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 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했을 것이므로 쉽사리 일본의 길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진핑정부는 최근 ‘신품질생산력’을 미래지향점으로 설정하고 과학기술 발전과 AI를 비롯한 신기술 산업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력갱생의 기술혁신 노력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글로벌 기업수도 계속 축소된다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내년의 글로벌 기업 판도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미중경쟁의 미래에서 양국의 기술혁신은 가속화될 것이며 특히 중국의 혁신 수준이 우리나라를 빠르게 추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산업재편 선점 위해 역동적 협력경제 모델 개발해야

상황은 급박한데 한국기업의 글로벌 기업 숫자는 지난 20여년간 정체 수준이다. 1991년 13개였던 글로벌 기업수는 외환위기 당시 9개로 급감했으며 2007년 15개로 회복한 후 15년간 14~16개를 반복하다가 반도체 경기가 호조를 이룬 2022년 18개로 반짝 정점을 찍은 후 작년에 15개로 도루묵이 된 상태다. 소국경제인 스위스와 네덜란드도 11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20여년간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로 대우 쌍용 두산 효성 등이 500대 기업에서 탈락한 이후 삼성 현대 SK LG 그룹의 계열사 약진이 없었다면 10개 초반대로 추락했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래 성장동력인 서비스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은 1~2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AI와 디지털 분야에서는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는 역동경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글로벌 대기업과 정부의 협력이 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 선점과 중소기업 발전을 결코 보장할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 생태계를 통해 상생해야 하는 관계다. 한국경제는 지정학 시대를 맞아 미중갈등의 단층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정부는 생존전략으로 협력경제 모델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