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에 등 돌리는 미·영 동맹

2024-09-03 13:00:00 게재

바이든 “인질협상 충분치 않아” … 영국, 이스라엘에 무기수출 일부 중지

2일 영국 의회에서 데이비드 래미 외무장관이 국제 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 사용될 수 있는 “명백한 위험”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일부 무기 수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거듭되는 가자전쟁 휴전 및 인질협상 촉구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를 부르짖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불만이 이스라엘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하마스에 억류됐던 인질 6명이 사망한 것과 관련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까지 벌어졌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에서도 네타냐후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들과 만나 네타냐후 총리가 협상 타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주에 이스라엘 및 하마스에 최종적인 인질 협상안을 제시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것에 근접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적인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미국이 조만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양자택일’(take it or leave it) 방식 최종 합의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 정부의 인질 협상팀과 만나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협상 타결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공동 중재국인 카타르, 이집트와의 협의를 포함해 인질을 석방하기 위한 다음 단계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은 미국 국적자 포함 인질 6명이 최근 사망한 것과 관련한 참담함과 분노를 표시했으며 하마스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이날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 일부 중지를 선언한 영국도 관심을 끌었다. 데이비드 래미 외무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검토 결과, “특정 무기 수출이 국제 인도주의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거나 위반을 용이하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분명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내준 대이스라엘 수출 허가는 350건으로, 이번 결정은 그중 약 30건에 해당한다. 군용기와 헬기, 드론 부품이 포함되지만 다국적 F-35 전투기 프로그램을 위한 영국산 부품은 들어가지 않았다. 또 가자지구에서 사용되지 않는 훈련기와 해군 장비, 화학 및 통신장비에 대한 허가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가자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하면서 영국에서는 이스라엘에 무기 공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으며 지난 7월 초 출범한 노동당 정부는 이 문제를 검토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일부 항목이지만 제한조치를 취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에 일부 무기 판매를 중단한 서방 주요 동맹국은 영국이 처음이라고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다만 래미 장관은 “영국의 수출 허가를 검토하는 것은 정부의 법적 의무”라며 “이는 전면 금지나 무기 금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영국은 국제법에 따른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계속 지지한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 출범 이후 영국의 상당한 정책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스타머 정부는 하마스와 연계 의혹이 제기됐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재개하기로 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한 반대 입장을 사실상 철회하는 등 이전 정부와는 사뭇 다른 노선을 취했다. 여기에 이번 무기수출 제한까지 더해진 셈이다. 이는 실질적인 무기공급의 차질보다는 정치외교적 함의가 더 크다. 영국의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은 2022년 기준 4200만 파운드(약 740억원)이며, 이스라엘의 무기 수입에서 영국산은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FT는 이스라엘로선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서방 주요 동맹국의 압박이 커진 만큼 외교적으로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짚었고, AP 통신도 이스라엘에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로서 이번 결정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성명에서 “영국의 이스라엘 방위로의 수출 허가에 대한 영국 정부의 제재 소식을 듣게 돼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고, 이스라엘 카츠 외무장관도 엑스(X·옛 트위터)에 “(영국의 이번 결정이) 테러조직 하마스와 이란 대리세력에 아주 문제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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