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중앙은행의 시간

2024-09-04 13:00:02 게재

우리 시간으로 9월 19일 새벽,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한국은행도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다시 중앙은행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중앙은행은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위대한 제도다. 중앙은행은 한 사회에서 통용이 되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중앙은행 설립 이전의 금리 결정 메커니즘은 요즘과 많이 달랐다.

한·미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하의 시간 다가와

돈의 가격에 다름아닌 금리는 사회 전반의 돈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는 돈을 빌리는 차입자 입장을 반영하는데 일반적으로 경기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경기가 좋을 때 돈의 수요는 늘어나곤 한다. 기업의 설비투자 수요나 가계의 소비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기가 좋을 때 금리는 상승하고 경기가 나쁠 때 금리는 하락한다. 피셔방정식은 금리결정 요인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산식인데 ‘명목금리=실질GDP성장률+기대 인플레이션’을 내용으로 한다. 실질GDP 성장률은 경기를 반영하는 지표로 피셔방정식은 돈에 대한 수요의 관점에서 금리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돈에 대한 공급은 자금을 빌려주는 채권자 입장을 반영한다.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떼일 가능성에 대한 보상’ 즉 리스크 프리미엄의 관점으로 금리를 해석한다. 자금 공급자 관점에서는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나 경기가 나쁠 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호황기에 비해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금 수요자 입장보다 공급자 논리가 금리 결정에 더 크게 작용했다. BC3000년 바빌로니아 왕조 때부터 금리의 기록이 전해지는데 바빌로니아와 고대 그리스, 로마 공화정 때 모두 왕조나 공화정이 쇠락하는 국면에서 공통적으로 금리가 상승했다. 재정악화를 비롯한 경제력의 쇠퇴가 권력의 몰락을 불러오곤 했기 때문에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국면에서 경기가 좋았다고 볼 수는 없다. 자금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경기가 나쁠 때 금리는 떨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왕조 등이 쇠하던 위기국면에서 오히려 금리가 올랐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여윳돈을 가진 이들이 자금 대여에 높은 이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등장하기 전에는 경제위기가 닥치면 그 여파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곤 했다.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 오히려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설립되면서 이 딜레마가 해결된다. 경기가 악화되면 공적 기관인 중앙은행이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현대 중앙은행은 위기 때 오히려 높은 이자를 요구했던 채권자들의 탐욕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경기가 나쁠 때 금리가 하락하면서 회복을 도모하는 현대 경제학의 상식은 중앙은행의 설립 이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중앙은행 주도의 관치 자본주의 세상 살고 있을 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민간 플레이어들의 중앙은행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막대한 유동성이 경제에 풀리기도 했지만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도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중앙은행은 특정 자산을 민간금융기관들로부터 매입함으로써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통상 중앙은행은 만기가 짧은 국채와 정부 기관의 보증이 있는 모기지 채권을 매수해왔다. 부도 위험이 없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인데다, 만기가 짧아 이자율 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은 장기국채를 매입(양적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이외의 민간이 발행한 본질적으로 위험한 자산을 매수(질적완화)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중앙은행 주도의 관치 자본주의의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으나 싫으나 중앙은행의 의사결정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