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진료중단 우려 현실화되나

2024-09-04 13:00:02 게재

일부 상급병원 야간·주말 진료 축소 … 곳곳서 ‘뺑뺑이’ 피해 확인

의료계 “정부만 위험한 오판” … 정부 “의료 붕괴는 과한 표현”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진료 중단이 현실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응급환자가 늘어나는 추석 연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대형병원들은 완전히 응급실 문을 닫는 ‘셧다운’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빚어진 인력 부족에 따른 진료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지역 상급병원이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강원대병원과 세종 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또 건국대 충주병원 역시 인력 부족으로 야간과 휴일 응급실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남아 있는 전문의도 피로 누적 =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서 자체 파악한 결과 2일 현재 이들 병원 외에도 순천향대 천안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도 응급실 운영 중단 등을 검토 중이다.

또 9월 1일 현재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은 14개, 흉부대동맥 수술이 안 되는 곳은 16개, 영유아 장폐색 시술이 안 되는 곳은 24개, 영유아 내시경이 안 되는 곳은 46개다.

의료계에서는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누적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피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도권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응급실의 경우 통상 응급의학과 전문의 1~2명과 레지던트 2~3명, 인턴 2명 등 의사 5~7명이 근무하는 구조였다. 현재는 전문의만 남아있다. 과도한 업무 부담에 사직을 고려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응급의학과의 경우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아무리 고연봉을 제시해도 쉽게 인력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특히 지방 병원의 경우 정주 여건도 좋지 않아 구인난이 더욱 심각하다.

응급실 파행 현실로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며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진료중단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11곳서 이송거부 28개월 여아 의식불명 = 이미 곳곳에선 의료진 부족에 따른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9일 오전 2시 16분쯤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 작업 차량 충돌 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50대 직원 A씨는 사고 발생 15시간 51분 만인 9일 오후 6시 7분쯤이 돼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119 구급대는 사고 발생 10여분 후 현장에 도착했다. 119 구급대는 A씨를 응급조치하고 현장에서 4분 거리에 있는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센터에 연락했지만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119 구급대는 외상센터 핫라인을 통해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에 연락해 외상 전담 전문의의 수용이 가능하다는 통화로 이송을 진행했다.

A씨는 사건 발생 1시간 5분이 지나서야 국립중앙의료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검사 후 병원측은 대퇴부·골반골 골절 응급수술을 할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다며 응급전원을 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다른 병원에 전원 가능 여부를 확인한 결과 마포구에 있는 서울연세병원이 응급수술이 가능하다는 확인을 받은 후 A씨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사고 발생 2시간 44분이 지난 후 병원에 도착했다.

A씨는 검사 후 머리 상처봉합 수술을 받았지만, 대퇴부 골절 수술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강서구 원탑병원으로 또다시 이송됐다. 결국 A씨는 원탑병원에서 사고 발생 후 15시간 51분이 지난 오후 6시 7분쯤 대퇴부골절 수술을 받았다.

또한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28개월 된 B양이 열경련이 일어나 위급하다’는 내용의 119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구급대원이 신고 접수 11분 만에 도착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다. 소방 당국이 서울과 경기지역 병원 응급실 11곳에 전화했지만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날 일산 3곳, 김포 2곳, 부천 1곳, 의정부 1곳, 서울 4곳의 병원이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다며 이송을 거부한 것이다.

B양은 119 신고접수 1시간 5분이 지난 오후 9시 45분이 돼서야 12번째 병원인 인천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B양은 병원에서 치료받았으나 의식불명에 빠져 약 한 달째인 3일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현재는 서울 소재 다른 병원으로 옮겨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실 상황 인식도 제각각 = 이런 가운데 응급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일 “전국의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는데, 정부는 위기를 부정하며 눈 가리기식 대책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이날 ‘응급의료 역량에 문제없다는 정부의 위험한 오판’이라는 자료를 내고 “응급실이 원활히 가동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과 배후 진료과목들이 필요한지 전혀 파악하지 않은 채 정부는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통계와 수치를 만들어 호도하고 있다”며 “불만 켜놓고 ‘응급실’이라는 간판만 달아놔도 (정상 진료) 숫자를 셀 기세”라고 비판했다.

또 안철수 의원(국민의힘)은 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부 관계자는 당장 구급차부터 타 보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안 의원은 “어제 복지부 차관이 응급실 대란에 대해 ‘일부 어려움은 있지만 붕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며 “응급실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 호도”라고 적었다. 이어 “정부 관계자들은 우선 반나절이라도 응급실에 있거나 아니면 당장 구급차부터 타 보기 바란다. 잘 준비된 현장만을 방문하거나 설정 사진을 찍고서 문제가 없다고 대통령실에 보고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는 “의료 붕괴는 과한 표현”이라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어려움은 있지만 응급 진료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409개의 응급실 중 99%인 406곳은 24시간 운영 중이다. 전체 409개 응급실 중 27곳(6.6%)만 병상을 축소했다.

장세풍 김신일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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