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새로운 산업에 주도권 가지려면
1998년 노키아는 미국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등극했다. 이후 2007년 말에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했고, 핀란드 수출물량의 20%,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에 해당 될 정도로 엄청난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다. 노키아는 변화와 혁신에 뒤쳐진 기업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최근 반도체의 대명사였던 인텔이 노키아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주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변화의 주기가 빠른 정보통신기업(ICT) 만이 아니다. 독일 최대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이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내 공장 폐쇄를 검토한다. 폭스바겐 경영진은 2일(현지시간) 노사협의회에서 독일 내 일부 공장 폐쇄와 감원이 포함된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자동차산업 무게중심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으로 이동한 가운데 변화와 혁신에 뒤쳐졌기 때문이다.
일본과 유럽 5대강국이 미국에 뒤쳐진 근본 이유
국가도 마찬가지다. 1988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위 안에 일본회사가 무려 16개나 있었다. 그런데 2024년 3월에는 시가총액 상위 20위 안에 일본회사가 하나도 없다. 1988년 일본의 GDP는 미국의 60%였으나 2022년에는 17%로 급락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미일통상협정(1986년, 1991년, 1996년), 고령화 인구구조, 후쿠시마 원전사고, 미국의 금융위기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럽의 5대강국(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위상 하락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88년 유럽의 5대강국의 GDP 합계는 미국의 95%였으나 2022년에는 45%로 추락했다. 34년 간의 변화로서는 지나칠 정도의 추락이다. 일본과 유럽 5대강국의 경제적 위상저하의 공통적인 이유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 또는 지식정보화사회로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동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고 있는 스위스의 경영대학원IMD에서 ‘2023년 디지털 경쟁력’을 발표했다. 미래준비도 기술 지식 등 3개 분야, 9개 부문, 54개 세부지표를 평가한 결과다. 순위는 미국이 1위(100), 한국이 6위(95)인 반면 20위 영국(83), 23위 독일(81), 27위 프랑스(79), 31위 스페인(77), 32위 일본(75), 43위 이탈리아(64) 순이다.
한국은 지식정보화사회로의 변화의 물결에 늦지 않게 동참했다. 2001년 6월 김대중정부는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토플러(Alvin Toffler)로부터 ‘위기를 넘어서 : 21세기의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받았다. 핵심 중의 하나는 한국은 산업화 경제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혁신적인 경제로 세계를 주도하는 지식기반경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지식기반 경제라는 선진경제에 한국이 참여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새로운 산업에 자본 인재 기술 모이도록 전략적 노력을
한국이 토플러의 충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지식정보화사회로의 전략적 방향을 만든 것은 통찰력 있는 결단이었다. 일본이 산업사회의 우등생이었다면 한국은 지식정보화사회의 우등생이 되고 있다. 박정희정부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략적 방향을 만들었고 김대중정부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전략적 방향을 만든 것이다. 지식정보화사회의 경제적 파이는 엄청나게 커져왔고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의 저성장에 대한 경제적 분석들이 다양하다. 인구문제, 미중갈등, 노동생산성 저하, 치열해지는 국제경쟁, 임금상승, 자원의 가격상승 등 많다.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파이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 새로운 산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에 자본 인재 기술 시스템이 모아지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혁신의 길이다.
한국산학협동연구원 이사
전 코스닥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