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승인권 사각지대 ⑤ 법 밖에 있는 국가재정
부담금·수익금 수천억원, 국회 심사·감사원 감사에서 ‘예외’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 등 “재정 귀속 없이 통제서 벗어나”
옥외광고사업수익금 심사, 지방의회 가능하지만 국회는 불가
법원보관금 운용수익 은행 귀속, 공탁금 수익금은 기금으로
국회 예산정책처 “국회심사 없는 자금운영, 국가재정법 위배”
각종 부담금, 수익금 등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재정에 들어와 있지 않아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들이 국회와 감사원 감시에서 벗어난 채 각 부처 등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3회계연도 결산보고서’를 통해서 “녹색자금, 옥외광고사업 수익금, 위탁선거관리경비 3개 자금은 개별 법률에 소관 부처의 사업추진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만 법률상 근거 없이 재정 외로 운영하고 있고 운용방식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위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자금은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복권수익금에서 재원을 받아 운용하는 자금이다. 사회복지시설에 수목을 심거나 무장애 나눔길 등을 조성하고 사회적 배려계층을 대상으로 숲체험·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는 사업 등에 주로 지출된다. 지난해 기금 수입액은 737억4000만원, 지출액은 740억900만원이었다.
이한성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산림청은 자체 심의기관인 녹색자금운용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집행하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녹색자금 결산서만을 보고하고 있는데 이는 사업 시행 전후 과정에 걸쳐 국회의 심사가 이뤄지는 국가재정 사업에 비해 재정통제 측면에서 미흡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275억1100만원의 수익금을 낸 옥외광고사업도 ‘법적 근거 없이 재정 외로 운영되는 사업’으로 지목됐다. 옥외광고사업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광고물 등의 정비 및 주요 국제행사의 성공적 개최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당초 대규모 국제행사인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지원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민간사업자의 광고물 등의 설치가 금지되는 지역에 한국옥외광고센터가 옥외광고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수익금은 국제행사의 개최(50% 이내, 잔여분은 옥외광고센터 배분), 지방자치단체(26%), 한국옥외광고센터(24%)로 배분된다.
이 분석관은 “옥외광고사업 수익금은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한 예산총계주의 원칙의 예외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 경비임에도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세입·세출 예산 외로 운용되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로 배분되는 수익금의 경우에는 옥외광고발전기금으로 계상되어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에 근거해 지방의회에서 심의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의 심의 없이 사업이 추진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앙선관위가 공공단체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선거를 관리하면서 든 경비 역시 법적 근거 없이 재정 외로 운영되고 있다. 이 분석관은 “위탁선거경비는 국가가 제공하는 용역에 대한 비용을 징수하는 수입대체경비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재정 내로 편입해 운용,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껏 중앙선관위는 위탁단체가 부담할 경비 부분에 관해서는 세입·세출예산으로 편성하지 않고 위탁단체로부터 별도로 납부받아 운용하고 남은 경비는 위탁단체에 반환하고 있다. 지난해 위탁단체로부터 납부 받은 경비는 총 381억6300만원으로 그 중 340억200만원을 집행하고 잔액은 반환했다.
중앙행정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 귀속되지 않고 재정 외로 운영되고 있는 ‘부담금’도 적지 않다.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담금은 부과대상과 특정 공익사업간에 밀접한 관련성을 있는 경우에 부과한다. 지난해 금융회사의 가계대출 금액의 일정비율을 징수하는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2740억원), 에너지 공급시설 건설비용의 일부를 사용자에게 부담시키는 ‘집단에너지 공급시설 건설비용 부담금’(1884억원), 금융회사 기업 운전자금 대출잔액의 일정비율을 징수하는 ‘지역신용보증재단 및 신용보증재단중앙회 출연금’(2084억원) 등 3개 부담금의 징수실적만 6709억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법적 근거도 없이 재정에 포함되지 않은 수입과 지출은 국회의 사전심의나 감사원 결산, 국회 결산심사 등에서도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각지대’로 보고 있다. 이 분석관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재정 외 운용은 효율적인지 여부 등에 대한 국회의 판단을 받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 하에서 자금이 운영되는 것은 국가기관이 예산서에 명시되지 않은 자금을 임의로 운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국가재정법에서 예산총계주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대법원의 법원보관금 운용수익금과 관련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가 세입예산으로 편입하도록 하는 근거 규정을 마련해 공적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해 말 법원보관금은 2조63억원에 달했지만 보관은행의 법원보관금 운용수익금은 보관은행에 귀속되고 있다. 법원보관금과 같은 성격의 공탁금의 수익금은 사법서비스진흥기금에 출연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10조8449억원의 운용수익금인 1009억원은 공적 재원으로 활용됐다. 이 분석관은 “대법원은 법원보관금에서 발생하는 법원보관금 운용수익금도 공적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의 마련을 추진하고 이러한 공적 재원을 바탕으로 사법서비스 이용자들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사업을 추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