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기관 재생에너지 투자, 화석연료 1/4에 불과
글로벌 에너지 전환 흐름과 상반된 모습 … 정부, 내년 재생에너지 예산 7.7% 줄여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재생에너지로의 이행 ‘에너지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금액이 화석연료 신규 투자액의 1/4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제 사회는 이미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액이 화석연료보다 1.8배 더 증가하는 등 에너지 전환이 상당 수준으로 진행되는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정부가 내년 재생에너지 예산을 올해보다 7.7% 줄이는 등 매년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을 줄이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석연료 투자는 증가, 재생에너지는 감소 = 5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2022년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금액은 10조6000억원으로 화석연료 투자금액 41조1000억원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 대비 화석연료 신규 투자금액은 4배 늘어난 반면, 재생에너지 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2020년에는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의 신규 투자 규모 차이가 각각 10조9000억원과 11조1000억원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2021년부터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투자금은 10조6000억원, 화석연료투자금액은 41조1000억원으로 화석연료 투자금이 재생에너지 대비 약 4배 높은 수준으로 벌어진 것이다. 이 기간 누적 신규 투자액은 재생에너지가 34조2000억원, 화석연료는 약 79조9000억원으로 약 2.3배의 차이가 났다.
특히 2021년과 2022년에는 국내 금융기관의 화석연료투자액이 급격히 늘었다.
2022년 공적금융의 화석연료 신규투자는 전년대비 75% 증가했다. 공적금융은 2021년 재생에너지에 약 3조6000억원을, 화석연료에는 13조원을 신규 투자했다. 1년 뒤, 각각 2조8000억원과 22조7000억원으로 두 에너지의 신규 투자 규모는 무려 8.1배의 차이를 보였다. 신규 투자 성장률을 비교했을 때, 재생에너지는 22% 감소하고, 화석연료는 75% 증가했다.
민간금융도 재생에너지의 신규 투자 규모가 많이 줄었다. 2021년 민간금융의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규모는 약 9조1000억원이었지만 2022년 투자 규모는 약 2조8000억원으로 69% 줄었다. 반면 민간금융의 화석연료에 대한 신규 투자는 2021년 14조9000억원에서 2022년엔 18조2000억원으로 22% 늘었다.
민간금융 섹터에서 1년 사이 화석연료 신규 투자에 금액이나 비중 면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증가한 곳은 은행이었다. 증권사에 비해 성장률은 낮지만 규모 면에서 약 3조8000억원이나 차이가 날 정도로 화석연료 신규 투자에 대한 운용 금액의 규모가 컸다. 포럼은 “은행은 탈석탄 금융 선언 이전에 체결된 대출 약정 계약으로 인해 화석연료에 대한 신규 투자가 여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며 “증권사는 민간금융 섹터에서 화석연료 신규 투자에 대해 가장 큰 성장률을 보인 곳으로 특히, 2022년 화석연료 회사채에 대한 신규 투자 규모가 많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계획도 없어 = 더 큰 문제는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계획도 없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국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금융기관은 총 32개 기관(공적금융 8개, 민간금융 24개)으로, 이중 구체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곳은 20곳,, 나머지 12곳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 민간금융의 경우, 신규 투자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관들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금액과 목표연도를 포함한 재생에너지 투자 로드맵을 함께 제시한 반면, 공적금융기관 중 구체적 투자 계획이나 로드맵을 제시한 곳은 전무했다. 특히, KDB산업은행이나 국민연금과 같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이 구체적 로드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사업 예산 매년 감소 =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의지라고 강조했다. 그 정책의지를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바로 예산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지원 사업 예산은 매년 감소 추세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5717억원으로 올해 예산 6196억원 보다 7.7% 감소했다.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을 470억원 이상 줄이고 원전 지원 예산은 최소 500억원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 따르면 공적금융기관(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을 통해 2030년까지 총 420조원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조달할 계획이다. 산업은행과 5개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은 2030년까지 총 9조원을 출자해 미래에너지펀드를 신규 조성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일관된 정책 방향성과 안정성은 금융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며 “이러한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금융정책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거스를 수 없는 대세 = 한편 지난해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고 에너지 효율은 2배로 늘리겠다는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효율 서약 The Global Renewable and Energy Efficiency Pledge’이 발표됐다. 한국을 포함한 130개국 이상이 서약에 참여했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제 반드시 가야 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석연료 대비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액 추이를 살펴보면 그 흐름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세계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액 규모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20년에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신규 투자 규모는 각각 1조2590억달러와 7330억달러로 약 1.7배의 차이였으며, 2022년에는 각각 1조6170억달러와 8970억달러로 약 1.8배의 꾸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누적 신규 투자 규모에서도 약 1.7배의 차이를 보여 에너지 전환 투자는 이미 대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