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문재인정부 ‘국민참여예산’ 지우나
2년 만에 1429억원→170억원, 88% 줄어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제보다 운영비 적어
국회 예산정책처 “정부 의지 부족 비판”
윤석열정부가 문재인정부에서 만든 ‘국민참여예산’을 대폭 줄이며 사실상 사업 지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3회계연도 결산분석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민참여예산이 170억원으로 문재인 대통령 집권 마지막해에 편성한 2022년도 예산안의 1429억원에 비해 88.1% 감소했다. 2년 만에 10분의 1토막으로 줄어든 셈이다.
국민참여예산제도는 국민이 예산과정 중 제안, 심사, 우선순위 결정에 참여해 재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으로 국가재정법에 근거해 2018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국민이 제안하면 각 부처의 사업화 검토, 예산국민참여단 선호도 투표 등을 거쳐 정부안에 반영하게 된다.
박근혜정부가 ‘탄핵’으로 마무리되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첫 예산에 반영된 제도다. 예산규모는 첫 해에 422억원이었고 매년 늘어나 문재인정부 마지막해에 편성한 2022년엔 최고치를 찍었다. 사업수에서도 처음에 6개로 시작했던 게 2022년엔 71개로 늘더니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51개, 13개로 축소됐다. 지난해말 2024회계연도 예산안을 심의하던 예결위에서는 8명의 의원들이 ‘국가재정법상 국민참여예산을 실천하기 위해 최소한 2023년 수준으로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증액의견을 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증액에 강하게 반대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민들이 제출한 제안건수 역시 지난해까지 늘다가 올해는 1191건으로 41.7%나 줄었다. 국민제안이 각 부처에서 ‘적격’으로 결정된 비율은 2019년 13.3%, 2020년 7.8%, 2021년 12.5%, 2022년 10.8%였지만 지난해에는 4.0%로 급감했고 올해는 7.0%로 소폭 회복하는 데 그쳤다.
‘적격’ 판정을 받은 후 예산에 반영된 비율은 2019년 23.8%, 2020년 27.5%, 2021년 29.7%, 2022년 28.0%였다가 2023년에는 40.2%까지 치솟더니 올해는 15.7%로 추락했다.
윤성노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국민참여예산 규모와 함께 국민제안 건수, 적격사업 결정률, 예산 반영률 등 예산 편성과정에 대한 국민 참여도를 보여 주는 주요 지표들이 2023년과 2024년에 최저수준을 보이거나 급락했다”며 “각 부처와 재정당국의 적극적인 국민의견 수렴과 반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참여예산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사업 예산 편성 추이는 정부 의지가 소극적이라는 단서를 보여준다. 2018년에 18억7800만원이었던 국민참여예산제도 운영사업 예산은 2020년 21억3500만원, 2021년 24억3500만원, 2022년 22억7600만원으로 20억원대를 유지하다가 2023년에는 17억6200만원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1년만에 70.7%가 줄어든 5억 1600만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예산에 그동안 편성돼 왔던 대외홍보 경비가 전액 삭감된 채 확정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서울특별시의 ‘시민참여예산제’와 비교하며 정부의 국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홀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예산은 2018년에 5억9700만원이 편성됐고 2020년(20억8500만원)까지 늘다가 2023년에는 3억3300만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5억2000만원으로 반등했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은 시민숙의예산제가 도입된 2020년까지 증가했다가 이 제도가 운영되지 않음에 따라 운영비도 감소했다. 윤 분석관은 “국가재정 규모의 3.3%에 해당하는 재정을 운영하는 서울시의 올해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예산이 정부의 국민참여예산제 운영 예산 규모를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전년 (국민참여예산제도 운영예산) 집행실적의 33.6%에 불과한 금액이 올해 예산으로 편성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적정 편성에 대해 2025년도 예산안 심사때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국회 예산정책처는 예산편성과 함께 집행, 결산, 성과평가 과정에서도 국민참여를 보장해 국가재정법과 시행령에서 규정한 ‘예산에의 국민참여’ 취지에 맞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방재정법에 따라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예산과정에 주민 참여’를 실현하는 경기도,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사례를 소개했다.
윤 분석관은 “국민참여예산 사업은 집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일반국민의 의견 제출이나 수렴절차가 별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당초 국민제안 취지의 달성 여부 등 국민참여예산 사업에 대한 별도의 성과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지방재정법에 지자체의 주민참여예산 제도 운영에 관한 평가는 매년 실시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올해는 행정안전부가 모든 지자체에 대한 평가를 직접 실시할 예정인 데 반해 국가재정법과 시행령, 기재부가 매년 수립하는 ‘국민참여예산제도 운영지침’은 제도운영에 대한 평가 규정이 없다”며 “중앙정부가 평가주체가 되는 지자체 주민참여예산제도 평가제도를 시행하면서 중앙정부의 소관인 국민참여예산제도 운영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도 운영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실제 운영에 환류토록 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