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릴 수도, 버틸 수도 없다…의대증원 딜레마 빠진 용산

2024-09-09 13:00:09 게재

“의대증원 마무리”에서 ‘2026년 재논의’ 한 발 양보

의료개혁 여론지지 약화 속 국회 여야의정 구성 관망

의협, 백지화·대통령 사과·경질 요구 … 야당은 ‘거들기’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을 놓고 입장을 번복하다 바통을 국회로 넘겼다. 의사집단 설득에 실패하면서 갈등이 장기화되고 국민 피로감이 높아지자 한 발 물러섰지만 의사단체가 호응하지 않고 야당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의대 증원 강행도, 후퇴도 모두 국정동력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정부, 복귀 전공의 ‘수련 공백’ 3개월 면제 정부가 근무지를 이탈했다가 복귀한 전공의들의 ‘수련 공백’ 일부를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면서 상급 연차 진급과 전문의 자격 취득에 차질이 없게끔 하기로 했다. 8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전공의 수련특례 적용 기준안’을 공고하고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사진은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붙은 보건의료노조의 전공의 파업 관련 인쇄물.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의료공백 정부 대응 지지세 감소=의대증원 문제를 놓고 대통령실은 지난 주말새 롤러코스터를 탔다. 2026년 증원규모 원점 재검토 여부가 쟁점이었다.

대통령실은 지난 5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의료개혁 문제를 조율했다. 이튿날인 6일엔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의 참여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기자회견에서 “마무리됐다”고 선언했던 의대증원 시기와 규모가 재검토 가능하다는 점도 밝혔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이날 YTN 뉴스에 출연해 “여야의정 협의체가 구성되고, 여기에 의료계 대표가 나와서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 수석은 “저희가 제안한 2000명이란 숫자에 구애되지 않고 합리적 안을 가져오면 논의한다는 방침”이라며 “특히 집단행동으로 의료계에서 이탈한 전공의, 의대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분들이 협의체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출범하기로 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조정 논의기구와 여야의정 협의체를 서로 연계해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증원규모가 ‘확정’됐다고 못박았던 2026년도 증원 규모도 원점 재검토 가능성을 열었다.

이같은 ‘태세완화’는 의대증원에 대한 지지여론 약화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갤럽이 3~5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료 공백과 의사 반발에 대한 정부 대응에 긍정적인 응답은 21%에 그쳤다. 지난 3월에는 38%였다. 반면 부정적 평가는 같은 기간 15%p 늘어 64%에 달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2026년 증원 유예 사실과 달라” =그러나 이를 놓고 2026년 의대 증원 유예라는 평가가 나오자 정부는 다시 방어선을 쳤다.

앞서 7일 국무조정실은 보도 설명자료에서 “일부 언론에 보도된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결정은 사실과 다르다”며 “의료계가 계속해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재논의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의료 인력 수급 체계는 국민연금처럼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며,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논의하더라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료인 수요 추계를 가지고 논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은 “정부안과 다른 의견이 있다면 과학적 분석에 터 잡은 의료인 수요 추계를 제시해야 재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며 “의료계가 과학적·합리적 의견을 제시한다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재논의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은 또 “정부는 의료계가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증원 규모에 이견이 있다면 과학적 근거를 갖춰 합리적 의견을 제시할 경우 이를 존중해 2000명이라는 숫자에 구애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재논의할 수 있음을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밝혀왔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과학적 수급 분석을 근거로 필요 최소한도의 규모로 의대 증원을 결정했고, 1년 8개월 이상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했으나 의료계는 증원에 공감하면서도 그 규모에 대해 이제껏 한 번도 의견을 제시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지난 1년 8개월 넘게 줄기차게 의료계에 요청해온 ‘과학적 근거에 의한 합리적 의견 제시’는 불변”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민주, 윤 겨냥 “의료대란 최고 빌런” =여기에 의사단체가 협의체 참석에 조건을 걸면서 대화 분위기에는 찬물이 끼얹어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8일 의협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의대 정원을 급하게 늘리는 것은 문제고 정말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합당하다면 2027년이나 그 이후부터 증원을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여야의정 협의체가 구성되면 적절한 의대 증원 숫자가 얼마인지를 논의하게 될 텐데, 논의 결과가 (입시에) 반영되려면 2025년과 2026년 의대증원은 일단 없던 일로 하고, 최소 2027년 정원부터 논의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의대증원을 일단 백지화한 후 2027년 정원부터 재논의하는 것이 여야의정 참여 조건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사과,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요구했다.

협의체 제의를 처음으로 한 야당도 거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8일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는 일이야말로 의료대란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거듭 요구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의료대란 해결 노력에 정부가 또다시 초를 치고 있다.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경질 요구를 외면한 채 ‘의대 증원 유예는 없다’는 고집을 또 반복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부는 어제 여야의정 협의체와 증원 재논의가 2026년 증원 유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며 “본격적으로 재논의할 수 있다던 전날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사과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며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차관이라는 사람은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이라는 망언으로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미 의료대란의 최고 ‘빌런’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지금이라도 결단하라”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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