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구 580만인데 노인복지주택은 0.12%
70세 이후 선택지 자녀주변 아파트뿐
미국 노인복지주택 거래 연간 18조원
한국 노인거주시설 대부분은 양로원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고 고령가구수도 올해 580만가구를 돌파했다. 고령가구는 65세 이상 노인이 가구주로 있는 세대다. 이같은 추세면 2040년에는 고령가구수가 1000만가구를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국내 주택시장은 걸음마단계다. 10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유·무료의 양로시설은 현재 180곳으로 9752명만 수용하고 있다. 별도로 사용료를 내는 시니어주택(노인복지주택)도 2001년 개원한 경기도 용인 ‘삼성 노블카운티’,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 등 39곳(8840명)에 그치고 있다. 은퇴자금을 넉넉히 마련해 70세 이후 생활을 설계해 놓아도 입주할 주택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 대비 시니어주택(공공임대 민간임대 포함) 공급비중은 지난해 기준 한국이 0.12%로 일본(2.0%) 미국(4.8%)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결국 노인세대 선택지는 자녀들이 거주하는 인근지역 아파트에 국한돼 도시가 빠르게 늙어가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시니어주택 연간 거래량이 90억달러(약 12조원)이고 요양시설까지 포함하면 140억달러(18조7800억원)에 이른다. 미국 부동산시장에서도 시니어주택이 주요 거래물건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일본 시니어주택 시장도 공급량이 풍족한 시기를 지나 현재 질적 성장 시기에 접어들었다. 2011년 고령자주거법 개정으로 새롭게 등장한 사코주(서비스형고령자주택)는 일본 노인층의 주거 선택지 저변을 넓혀 시니어주택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주택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반해 국내 노인거주시설은 공공용도로 분류되는 요양원이 가장 많다. 현재 2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노인요양시설은 2008년 1332곳에서 2022년 기준 4346곳으로 늘었다. 입소정원은 같은기간 6만6000명에서 21만7000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곳은 재정이 투입된 복지시설로 질병으로 인한 요양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 장기요양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건강한 노인이 증가하면서 시니어주택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건강한 노인들이 지역을 옮겨가며 활발하게 시니어주택을 거래했기 때문이다.
국내도 건강한 노인과 고령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2020~2050)를 보면 65세 이상 1인 가구는 2020년 161만8000가구에서 2050년 467만1000가구로 거의 3배가 된다. 비율도 25%에서 51.6%로 뛴다. 앞으로 인구가 감소해도 국내 고령자는 20여년 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국내 시니어주택 분야도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정부도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토지·건물 사용권을 통해 실버타운 설립을 가능하도록 개정하고 인구감소지역에는 분양형 시니어주택도 가능하도록 정책 개선방안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장기요양보험 부분편입과 같은 제도 개선을 빠르게 추진할 경우 국내 시니어주택 시장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시니어주택이 공급에 비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롯데건설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공급하는 시니어주택 VL르웨스트의 경우 보증금 10억원에 매달 200만~300만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지만 입주를 앞두고 계약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된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공급하는 시니어주택 ‘더 시그넘 하우스’(230실)는 방 2개가 딸린 전용 59~82㎡에 입주하려면 최장 3년을 대기해야 한다. 보증금 10억원에 매달 480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시니어주택 ‘더클래식500’은 2009년 준공 이후 2013년에야 입주계약 100%를 채웠다.
배상영 대신증권 책임연구위원은 “투자 시장에서 시니어주택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며 “동탄 헬스케어리츠와 이지스자산운용의 평창처럼 시니어주택 자금조달에 성공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