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중진국 함정과 한국형 함정

2024-09-11 13:00:02 게재

최근 세계은행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이란 보고서에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1960년 1200달러도 채 안됐지만 2023년엔 3만3000달러에 육박했다”며 한국을 ‘성장의 슈퍼스타(superstar)’ ‘모든 중진국 정책 입안자들이 숙지해야 할 필독서(required reading)’라고 평가했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으로 진입한 뒤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되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 ‘3I’로 중진국 함정 탈출했지만 ‘한국형 함정’에 갇혀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갇히지 않고 고소득국가로 발전한 이유를 첫째 대외개방 해외자금도입 등을 통해 투자자금 마련과 이를 교육과 인적자본, 인프라에 과감하게 투자(Investment), 둘째 선진 해외기술의 도입과 주입(Infusion), 셋째 경쟁·해외 진출 촉진과 기술혁신(Innovation) 강화로 요약한다.

이러한 ‘3I 전략’이 그동안 효과적이었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새로운 문제들, 즉 ‘한국형 함정’을 탈출하는 데 충분할까? 한국형 함정을 이루는 새로운 문제들은 우선 경제사회적으로 거의 모든 부분에서의 격차심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와 근무여건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국민계층과 세대별로 소득과 의식 격차, 수도권과 지역 간 격차, 성별 상호혐오와 임금 격차가 심화되었다. 또한 인구 측면에서는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인해 인구감소와 이에 따른 경제활동인구의 급속한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급격한 노령화로 경제활력은 저하되고 공적연금 부담은 급격히 증대됐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소멸이 가속되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국민 계층간 진버 보수 간 통합보다 갈등이 심화됐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형 함정을 깊숙이 만들고 있다.

우리는 3I 전략을 넘어서 이제 국가시스템을 변혁(Transformation)해야 한다. 즉 'T 전략'이 매우 긴요하다. 우선 인구문제 해결과 지속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인 이민 유입의 경우 부작용이 있지만 이민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해 외국의 우수인력들을 대폭 받아들여야 한다. 그와 동시에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 등 모든 조직의 운용방식을 톱 선진국 수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법적 규정적으로 허용 가능한 것들을 고지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규제하는 포지티브시스템(열거주의)에서 허용되지 않는 부분만을 간결하게 명시하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시스템(포괄주의)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와 공공기관들의 규제와 관료주의를 줄이고, 관리비용을 줄이며, 경제주체들 간의 신뢰를 높이고, 예측가능성을 향상시키며, 민간의 창의성도 더 높게 발휘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격차해소를 위해 특정 정당이나 행정부 차원이 아니라 정부 여당 야당 사회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단체 세대별단체 여성단체 등이 범국가적으로 참여하는 '국가격차해소협의체'를 만들고 산하에 분과별로 소위원회를 운영해 격차해소방안들을 만들어서 국가시스템 개혁 차원에서 이를 실행해야 한다.

‘3I 전략’ 넘어 국가시스템 개혁하는 ‘T 전략’으로 나가야

이러한 협의체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한다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개혁(헌법 개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2%의 득표율 차이 이하로도 승자가 권력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제도는 정당 간, 사회계층 간 극심한 갈등과 권력투쟁만 가져오는 부작용을 양산한다. 또 단임제는 책임성도 약해 한국형 함정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이 지난 ‘잃어버린 30년’ 동안 그들의 국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조하지 못해서 ‘일본형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점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조현대 기술경영경제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