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지방분권·권역별 거점개발 절실”
첫 시·도지사 콘퍼런스 열려
저출생·지역불균형 해법 제시
“중앙정부에서 인심 쓰듯 떡 하나씩 나누어 줄 게 아니라 지역 거점마다 저마다의 떡시루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1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2024 시도지사 정책콘퍼런스’에서 “지역에 연방제에 준하는 과감한 자치와 특례를 부여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박 시장은 이날 콘퍼런스 첫 기조발제자로 나서 “잠재적 성장률의 지속적 저하, 유례없는 저출산, 사회적 격차의 심화를 대한민국이 직면한 3대 위기”라며 “이 위기가 모두 수도권 일극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박 시장은 이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권역별 혁신거점을 육성하는 광역경제권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연방제에 준하는 과감한 자치와 특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역별 혁신거점 조성과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강화는 이날 콘퍼런스에 참가한 시·도지사들의 공통된 요구다. 지방을 권역화해 수도권과 경쟁할 성장거점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지방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도록 행정·입법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요구다.
◆오세훈 ‘4개 강소국’ 프로젝트 눈길 =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방소멸 위기 대응을 위한 전략으로 ‘4개의 강소국’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전국을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4개 권역으로 묶어 아일랜드 싱가포르 두바이 같은 도시국가형 지자체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오 시장은 “인구 500만명이면 도시 경쟁력을 갖기에 충분하다”며 “행정·입법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해 지역 간 시스템 경쟁을 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대구·경북 대전·충남 등에서 추진 중인 행정통합과도 같은 흐름이다. 또한 박형준 부산시장이 내세운 혁신거점 조성 주장과도 같은 얘기다. 특히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외교·국방 분야를 제외한 중앙정부의 권한을 획기적으로 지방에 이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독일식 상원제 도입을 주창하고 나섰다. 지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상원을 설치하자는 주장인데, 가장 큰 이유가 법률안 발의권이다. 김 지사는 프랑스의 지방재정위원회도 검토해봐야 할 제도라고 소개했다. 이 위원회는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도 참여해 지방 관련 재정정책을 논의하는 기구다. 김 지사는 “지방의 권한 강화는 대한민국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며 “독일·프랑스식 연방제 도입을 위한 지방분권형 개헌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흠, 프랑스식 동거혼 제도 도입 주장 = 시·도지사들은 심각한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대책을 내놨다. 그 중 눈에 띄는 정책이 충남도의 ‘공공분야 주 4일 출근제’다.
충남도는 지난 7월부터 35개월 미만 자녀가 있는 도청 직원 143명에게 의무적으로 주 1일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아직은 제도 도입 초기이지만 이 정책은 도 산하기관과 시·군은 물론 타 시·도로도 확산되고 있다. 충남도는 기존 8세까지 적용되던 하루 2시간 돌봄도 전국 최초로 12세까지 확대해 시행 중이다. 김 지사는 프랑스식 동거혼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프랑스는 비혼 출산율이 62%에 달하지만 우리는 지난해 기준 5%에 불과하다”며 “비혼 동거 커플에게도 혼인부부와 동일한 세금과 복지혜택을 부여해 결혼 부담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도의 저출생 대응 정책도 파격적이다. 충북은 지난해 출산육아수당(1000만원)과 임산부 예우조례 제정, 난자냉동시술비 지원 등을 도입했다. 신혼부부와 출산가정이 1000만원을 대출받을 경우 연간 최대 5%까지 이자를 지원하고 청년 신혼부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반값아파트도 공급한다. 결혼·임신·출산·돌봄 전 주기별로 도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지원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는 생각이다. 실제 이 같은 정책은 지난해 출생아 수 증가율 전국 1위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충북이 대한민국 인구증가의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며 “혁신적이고 과감한 저출생 대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북 농업정책, 제주 에너지정책 눈길 = 이날 콘퍼런스에서 시·도지사들은 다양한 정책성과를 통해 지역 소멸에 대응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경북은 ‘주주형 이모작 공동영농 모델’을 통해 새로운 농업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고령화와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농촌 문제의 해법이다. 지난해 시범사업에서 평(3.3㎡)당 2350원이던 소득이 4700원으로 2배 늘어났다. 개별영농으로는 엄두를 내지 못할 결과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농업 혁신은 지방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며 “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가 대개조의 한 축”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가 추진 중인 탄소중립 정책도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정책이다.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7GW 이상, 발전비율 70% 이상, 수소 6만톤 이상 생산 등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의 탄소중립 정책은 다른 지자체는 물론 전 세계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2개의 완성차 공장 보유, 광산업 기반 조성 등을 통해 지역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며 “정치를 넘어 산업에서도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 이장우 대전시장은 과학인재 기반 전략산업 육성 정책을 자랑했다. 그는 “기존 경제지도는 2015년 서울을 중심으로 15㎞ 반경인 판교라인, 그리고 2000년 25㎞ 반경인 기흥라인에 머물러 있다”며 “이를 150㎞ 거리의 대전라인까지 확장해 수도권 일극화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김두겸 울산시장과 박완수 경남지사의 지역사업 활성화 전략도 행사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