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자산 조작에 부실감사…감사인 독립성 의무 위반도
금감원, 분식회계 사례 공개 … 자금·회계업무 담당자 거액 횡령, 11년간 몰라
금융감독원이 매년 한 차례 공개해온 기업 분식회계 사례를 올해부터 2회 공개하는 것으로 주기를 단축했다. 공개 시기를 빨리함으로써 기업과 회계업계에서 유사한 사례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11일 금감원은 올해 상반기 회계심사감리 주요 지적사례 13건을 발표했다. 지난해 주요 지적사례 14건을 올해 5월 발표한 이후 4개월 만이다.
공개된 분식회계 사례 중 섬유제조업체인 A사는 15년 이상 자금·회계업무를 담당한 직원 B씨가 11년간 약 350억원을 횡령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외부감사인도 감사 과정에서 적발를 못했다. 분식회계가 드러난 이후 A사는 B씨가 횡령을 은폐하기 위해 매출채권을 조작했기 때문에 관련 자산을 불법행위 미수금으로 계상하고 회수되지 않은 금액은 대손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함에도 이를 회계처리 않아 당기순이익 및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했다.
회계법인의 외부감사는 부실했다. 감사인은 매출채권 실제성 확인을 위한 외부조회와 관련해 회사가 제시한 거래처 주소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조회서 회신이 저조해 추가 조회서 발송시 감사인이 직접 발송과 회수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를 회사에 요청해 B씨가 조회서를 발송·회수해 감사인에게 전달했다. 감사인이 거래처의 매출 발생 여부 등을 확인했다면 허위 계상을 알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감사절차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금감원은 “회사는 자금·회계업무를 분리해 장기간 동일인이 수행하지 않도록 방지할 필요가 있고, 전표 입력시 적절한 승인권자의 승인이 이뤄질 수 있도록 통제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현금실사 및 통장 잔액조회를 정기적으로 점검 및 수시로 실시해 직원의 횡령 동기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또 “감사인은 회사의 채권에 대한 독립적인 외부조회서 절차 실시 및 비정상적인 분개 입력 여부 등 확인을 위해 회계감사기준에서 규정한 감사절차를 충실하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재무제표 작성 맡은 회계사무소가 외부감사도 … 결국 부실감사 = C사는 의약품 도매업을 하는 비상장사로 재고관리 등을 위해 외부 상용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재고 관련 결산업무는 기장대리(회계장부 작성) 회계사무소에 의뢰해 수행했다. C사는 금융회사 원활한 대출 실행과 세무조사 회피 등을 위해 내부적으로 목표 당기순이익을 설정하고 재고자산의 수량 등을 조작했다. 재고자산을 허위 계상해 유효기간 경과 또는 반품 등으로 회수가능액이 장부가액에 중요하게 미달하는 재고자산에 대해 손상차손을 인식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익을 조작했다.
감사인은 재고자산 실사시 실사대상 재고자산을 직접 선정하지 않고 회사로부터 재고자산 실사목록을 제공받아 실사를 수행했다. 파손·진부화(가치하락) 재고자산의 손상 관련 검토 및 확인 등 재고자산에 대한 감사절차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장대리 공인회계사가 C사의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동일 감사반 소속 공인회계사에게 외부감사업무를 소개해 같은 회계사무소에서 기장대리와 외부감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등 외부감사법상 독립성 의무를 위반했다.
금감원은 “감사인은 재고자산 실사 목록 등을 직접 선정하고, 재고자산 수량 등이 증빙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감사인은 감사계약 체결시 같은 감사반 소속 공인회계사가 회사의 재무제표 대리작성 업무를 수행하는지, 이해관계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이후 매출하락에 실적 조작 = D사는 코넥스 상장기업으로 코스닥 이전 상장을 추진하던 중 코로나 이후 정부의 방역 완화 방침으로 제품(코로나 관련 특수상품)의 판매가 급감해 재고물량이 쌓이자 실적 조작을 계획했다. 홍콩에 위치한 거래업체에 제품으로 보낸 후 단순 분리해 다시 들여왔음에도 마치 신규 거래처에 정상적으로 제품을 수출해 이와는 별도로 새로운 원재료를 수입한 것처럼 꾸몄다.
허위의 매출 및 매출 원가를 계상했고 외부감사인에게 허위로 작성된 공급계약서, 금융거래 증빙 등을 제출해 외부감사를 방해했다.
금감원은 “상장예정법인의 경우 원활한 상장 심사 및 상장시 고평가를 받기 위해 매출 및 당기순이익 조작의 분식회계유인이 항상 존재함을 유의해야 한다”며 “가공매출은 형식적인 서류들이 모두 구비돼 있다는 점에서 감사인은 회사가 제시한 증빙이나 진술에 의존하는 대신, 사전 협의자료 등을 강화된 거래 전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해 다른 증빙 서류와의 대조를 통해 보다 높은 증거력을 확보하는 등 강화된 감사 절차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리종목 지정을 피해기 위한 분식회계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E사는 광학필터 등을 제조하는 코스닥 상장업체로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함에 따라 추가 영업손실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상황에 놓였다. E사는 해외 자회사 등과의 자금순환거래를 통해 마치 장기 미회수 매출채권이 정상적으로 회수된 것처럼 속여서 대손충당금을 환입한 것처럼 조작했다. 회사는 영업이익 확보를 위한 자금순환 거래를 위해 손상 사유가 지속되고 있는 해외 자회사에 대한 유상증자를 실시한 후 종속기업투자주식에 대한 손상차손은 인식하지 않은 반면, 대손충당금 환입을 통한 영업수익 인식으로 손익을 조정했다.
금감원은 “감사인은 회사가 종속기업이나 관계기업에 유상증자를 실행하는 경우, 자금순환 등 다른 동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계정과목에 따른 일반적인 감사절차 이외에 회사의 거래 동기, 거래 실질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유사 사례 재발방지 등을 위해 유관기관(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및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을 통해 기업 및 감사인에게 심사·감리 주요 지적사례를 배포할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