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한동훈 “지구당 부활” 깃발…오세훈·조 국 “정치 퇴보”
대표 회담 ‘재도입 적극 협의’ 여야 협력 분위기
당원·시민 참여 확대 명분 … 기반 확대 기대
“민생과 무슨 상관 … 토호 득세 창구” 비판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지구당 부활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 1일 한동훈·이재명 대표간 회담에서 ‘재도입을 위해 적극 협의한다’는 공동발표문을 내놓은 이후 공동토론회를 열고 속도를 내고 있다. 지구당이 당원과 시민들의 참여공간을 확대하고 국회 원내·외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오세훈·조 국 등은 정치발전과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이다. 부패와 토호 정치의 창구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내놨다. 기존 여야의 대립구도와는 확연히 다른 논의 구조다. 진보·보수를 떠나 지도부 등 주도세력과 잠재적 경쟁구도 등 복잡한 셈법이 녹아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대표가 된 다음에 이렇게 (양당이) 마주 앉아서 토론회 하는 걸 처음 해본다. 당리당략이라든가 정무적 유불리가 있을 수 있는데도, 지구당 부활이 대한민국 정치를 복원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9일 국회에서 열린 ‘지역당 부활과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말이다. 이날 토론회는 김영배 민주당 의원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김 의원은 22대 국회 1호법안으로 지구당 부활과 지구당 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참여정치 활성화법’을 대표발의한 대표적인 지구당 부활론자다. 윤 의원은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와 대표자리를 놓고 경쟁일 벌인 여당 5선 중진의원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구당 필요성을 역설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재명-한동훈 대표의 공감대 표시 이후 사실상 지구당 부활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몰아가는 양상이다.
원외·신인 정치인들의 활동 공간을 확대하고 지역·정당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구당 제도 부활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한동훈 대표는 “20년 전 정치 상황에서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 개혁에 맞았다. 2024년의 시점에서는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정치 신인과 청년, 원외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현역 국회의원 간) 격차를 해소하고 현장에서 민심과 밀착된 정치를 해내기 위해서는 지역당을 부활하는 게 정치 개혁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은 오히려 정치 신인들이 안정적으로 주민을 만날 공간을 확보해주고 필요 시에는 적절한 수준의 정치 후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유튜브를 포함해 언론, 시민단체, 선관위 등 다양한 파수꾼이 정치를 지켜보고 있다”며 “이런 시민의 감시 속에서 지구당 부활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더 개혁하고 시민이 더 참여하게 하는 새 정치의 장이 될 것이고, 제도도 더 건강하게 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과 윤 의원은 ‘지구당’을 통해 당원과 시민들의 정치참여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지구당이 폐지된 기간에 돈 안 드는 정치에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지구당을 (만들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주는 게 오히려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도 “국민의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해 각자의 생활 단위에서 정치와 정당의 주인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전문가들도 정당의 자율성과 정치자금 운용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며 지구당 부활 논의에 긍정적 입장을 표했다.
지구당 설치를 위한 정당법 개정안은 지난 2일 국회 행안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상태로 본격적인 부활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기존 정당 입장에선 현역 의원 지역구뿐 아니라 원외 위원장 지역구까지 정당의 뿌리조직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원외 위원장들이 지구당 부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민주당은 영남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당력을 유지·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재명·한동훈 등 당 조직을 이끌며 차기 대선을 노리는 입장에선 정당정치 활성화라는 명분과 함께 지지기반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카드다.
거대 양당 대표와 지도부 등이 나서면서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오세훈·홍준표·이준석·조 국 등은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 정치·개혁이 아닌 ‘정치 퇴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04년 지구당 폐지를 골자로 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 명분을 붙여도 돈 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며 여야를 비판하고 나섰다.
여권의 차기 주자 중 한명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부패로 퇴보하는 정치로 가려고 한다”면서 반대론을 편다. 홍 시장은 당내 표심을 노린 술책이라며 “결국 정치 부패의 제도적인 틀을 다시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 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거대 양당의 이같은 논의에 대해 “정치개혁 제1의 과제인가에 대해선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었다.
대립적 관계에 있는 거대 양당이 지도부 등 주류와 비주류가 갈려 찬성·반대파로 나뉘고, 야권 안에서도 소수당이 거대 양당으로 쏠림현상을 우려하는 견제 목소리를 내는 모양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