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재출마에 민주당 “재보선 치명타”
보수진영, “비교육적” 도덕성 집중 공격 나서
10월 재보궐 성적표, ‘이재명 2기 평가’ 인식
단일화 과정서 당원 독려 등 ‘낙선운동’ 예고
선거비용을 반납하지 않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사진)의 재출마에 더불어민주당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도덕성’을 문제 삼아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도 곽 전 교육감은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곽노현 재출마’가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등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재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교육 중립성을 이유로 교육감선거의 경우 정당 개입이 차단돼 있어 정당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게 민주당의 고민이다. 잘못 개입했다가는 법정 다툼으로 번지며 오히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11일 민주당 관계자는 “곽 후보의 출마는 민주당의 최대 악재로 보궐선거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치명타가 될 것인데다 민주당의 향후 행보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며 “민주당에서도 비공식적인 채널로 사퇴를 권유하고 있지만 쉽게 그만둘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본인이 계속 하겠다고 하면 당으로서는 강도높게 하기 곤란해진다”고도 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이재명 대표 2기’ 체제에서 처음으로 치르는 선거로 사실상 이 대표의 리더십 평가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곽노현 재출마’의 악영향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가장 큰 부담은 진보진영의 도덕성에 대한 불신의 확산이다.
모 수도권 재선의원은 “말 실수로 인한 허위사실 공표 같은 선거법 위반은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상대 후보 매수는 의도성이나 죄질이 무거운 쪽에 속한다”면서 “당에서도 조치를 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곽 전 교육감은 2012년 선거에서 2억원을 건네며 상대 후보를 매수했다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의 유죄가 확정돼 교육감직에서 중도 하차했고 당선무효형 선고에 따라 약 35억원의 선거비용을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30억원은 미납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곽 전 교육감은 대규모 비용이 필요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그는 2019년 12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겨우 피선거권을 회복했다.
게다가 조희연 직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8월29일 대법원에서 전교조 해직 교사 부당 채용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직위를 잃은 뒤 치르는 보궐선거에서 ‘유죄’를 받은 곽 전 교육감이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은 매우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여당 등 보수진영의 파상공세에 방어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른 범죄도 아니고 상대 후보를 돈으로 매수한 것”이라며 “곽노현 씨의 등장은 근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최악의 비교육적인 장면”이라고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을 부정하는 민주당과 좌파 진영의 철면피 선동은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다. 14년 전 곽노현 교육감에서 시작돼 한명숙 전 총리,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거쳐 이제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곽 전 교육감의 출마를 민주당 인사들과 연결해 비판했다.
곽 전 교육감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다. 곽 전 교육감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낮지 않다. 지명도 중심의 여론조사에서 진보진영 후보군 중 가장 높게 나왔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CBS 의뢰로 지난 8~9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곽 전 교육감이 14.4%의 지지를 받으며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 중 가장 선호하는 인물로 꼽혔다. 그 뒤로는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12.2%,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 8.4%, 김경범 서울대 교수 6.2%,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 5.9%, 방현석 중앙대 교수 4.4%,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 4.1% 순이었다.(무선ARS방식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번 출마는 시민의 상식선에서 볼 때 여러모로 적절하지 않다”며 “서울시민의 눈으로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자중하길 권고한다”고 했다.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도 민주당 공천이면 후보군이 안 됐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출마 불가론’에 힘을 실었다.
곽 전 교육감은 “모든 재산을 선거비용 반환을 위해 내놨고, 지금도 연금의 일부를 내고 있다”며 “평생을 갚아나갈 것”고 했다. “법치주의 관점에서 저에게 적용된 조항은 문제가 많다”며 “저는 양심의 법정에서 당당하고 떳떳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방교육자치법 46조2항에 따라 정당의 대표자나 간부, 유급 사무직원은 특정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등 선거에 관여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공개적인 개입보다는 비공개적인 ‘사퇴 요구’와 함께 단일화 과정에서 서울시 당원들에 대한 메시지 등으로 사실상 ‘낙선 운동’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당에서 적극적인 개입이나 언급을 하기는 어렵지만 당원들의 투표독려는 가능한 만큼 이를 활용해 적절한 인사가 뽑힐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단일화 과정에서 곽 전 교육감의 도덕성 등을 문제 삼는 메시지를 담은 투표독려를 계획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주목된다.
진보 진영은 최근 교육계 진보 인사들을 주축으로 ‘2024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선거인단 구성, 여론조사 비율 등을 놓고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보궐선거는 다음달 16일에 치러지며 사전투표는 같은 달 11일부터 이틀간 실시된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