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침체 우려 확산, 국제유가 급락
미 경기둔화 조짐과 또 불거진 미·중 갈등
중국 디플레이션, 새로운 악순환 단계 진입
세계경제 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2021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미국의 경기둔화 조짐과 또다시 불거진 미·중 갈등, 잇따른 디플레이션 경고에 직면한 중국경제가 새로운 악순환 단계로 진입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11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전일(현지시간)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69.19달러로 전거래일 대비 3.7%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65.75달러로 4.3% 하락했다. WTI 가격은 장 중 한 때 5%가 넘는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날 유가 하락으로 브렌트유와 WTI는 1년 전 가격보다 각각 21.46%, 21.76%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급락이 주요 요인으로 경기둔화 혹은 침체 리스크에 따른 글로벌 원유 수요 전망 약화를 꼽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날 발표한 월간 보고서에서 중국의 성장둔화 전망 등을 반영해 올해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 전망치를 하루 211만배럴에서 203만배럴로 하향 조정했다. 2025년 수요 증가분 전망 역시 하루 178만배럴에서 174만배럴로 낮췄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또한 이날 보고서에서 석유공급 우려로 이달 중 브렌트유 현물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시장의 수요둔화 우려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OPEC의 원유 수요 전망 하향에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미국 침체 우려도 일부 작용했지만 잇따른 디플레이션 경고에 직면한 중국경제 둔화가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표된 중국의 8월 무역수지가 예상을 상회한 910억달러를 기록했지만 부진한 수입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최근 블룸버그는 중국 디플레이션 상황이 새로운 악순환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9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이 중국 바이오 기업과 드론 제조회사,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미국 내 거래 등을 제한하는 대 중국 견제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킨 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여전히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향후 미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2020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8월 파산 신청이 급증해, 올해 첫 8개월 동안의 총 건수가 2020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10년 이후에는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유가 급락의 여파로 미국 국채금리가 또다시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10년물 금리가 3.6%대까지 하락했다. ‘유가+금리의 동반 하락세’는 일단 경기침체 리스크를 반영하고 있어 우려된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경기둔화에 은행권 수익 전망이 타격을 받으며 JP모건 주가가 5% 급락하기도 했다.
다만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중국의 동반 침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로 유가가 현 수준보다 추가로 급격히 하락, 즉 40~50달러대로 급락하지만 않는다면 미국 경기 연착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연구원은 “만약 중국경제의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예상과 달리 더욱 장기화될 경우 중국발 디플레이션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 특히 한국경제와 금융시장에 시커먼 먹구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영숙·이재호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