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국경·프래킹...사안마다 격한 충돌

2024-09-11 13:47:37 게재

해리스·트럼프 첫 TV토론 공방전

악수로 시작했지만 냉랭하게 헤어져

미국 대선을 55일 남겨둔 10일 밤(현지시간) 민주·공화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ABC 방송 주최 TV대선 토론에서 날카롭게 충돌했다.

두 사람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 마련된 토론장에 들어서 사회자의 소개가 있은 뒤 악수를 나눴지만 경제, 이민, 낙태, 국가 안보 등 핵심 주제를 놓고 격한 공방전을 벌였고, 토론 뒤엔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 낙태권 충돌 … 서로 “거짓말” 목청 = 두 후보는 연방 차원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연방 대법원에서 폐기된 것 등을 두고 부디쳤다.

트럼프는 판결 폐기가 헌법학자 등이 지지했던 사안이라면서 “그들은 ‘로 대 웨이드’를 각 주로 되돌리려고 했으며 그것이 내가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과거 신생아가 출산한 이후에 “아기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당의 낙태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해리스는 “여러분에게 (토론에서) 거짓말을 많이 듣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것은 트럼프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해리스는 “이제 20개 주 이상이 (낙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 등을 범죄화하는 ‘트럼프 낙태금지법’이 있다”라면서 이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등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다시 선출되면 전국적인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그것은 완전 거짓말”이라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폐기는 각 주가 낙태(금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낙태 금지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제는 각 주가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그것(내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미국 어디에서도 여성이 임신 기간을 다 채우고 낙태를 요청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낙태 금지법 때문에 미국 여성들이 시험관(IVF) 시술을 거부당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것은 또 다른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4건 형사 기소 놓고 설전 = 트럼프의 형사 기소와 관련해서도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해리스는 트럼프를 “국가안보 범죄와 경제 범죄, 선거 개입으로 기소된 누군가”로 표현하면서 “성폭력에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공세를 폈다.

트럼프가 기밀자료 유출 및 보관, 성추문 입막음돈 지급 관련 회사 서류 허위 기재,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등으로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하고, 성폭력 의혹 관련 민사 사건에서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해리스는 “그(트럼프)의 다음 법정 출석은 11월 그의 형량 선고 때가 될 것”이라며 11월26일로 최근 일정이 새롭게 잡힌 입막음돈 제공 관련 사건의 형량 선고 기일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트럼프는 “최근 연방 대법원의 결정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 승리했다”며 전직 대통령의 재임중 행위에 대해 폭넓은 형사상 면책 특권을 인정한 대법원의 7월 1일 결정을 거론했다. 그런 뒤 그는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가 “사법 무기화”라고 주장했다.

◆해리스 ‘프래킹’ 입장 변경 놓고 공방 = 셰일가스를 시추하는 기술의 일종인 수압 파쇄법인 ‘프래킹’(fracking)을 둘러싼 공방도 벌어졌다. 해리스가 과거 이에 대한 금지를 주장했다가 입장을 바꾼 것이 계기가 됐다.

해리스는 ‘프래킹’ 이슈가 중요한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토론에서 입장을 바꾼 이유를 묻는 사회자의 말에 “제 가치관(value)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2020년에 프래킹을 금지한다고 말했다”면서도 “저는 부통령으로 프래킹을 금지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래킹 문제가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상원 통과시 자신이 당연직 상원 의장으로서 캐스팅보트를 던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다양한 에너지원에 투자해서 해외 석유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우리가 역사상으로 가장 큰 폭으로 국내 석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외국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없다는 제 가치관과 관련된 접근법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해리스를 향해 “12년간 (프래킹에) 반대해왔다”면서 “그녀는 펜실베이니아에서 프래킹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선거에 이기면 펜실베이니아의 프래킹은 (취임) 첫날에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 국경·불법이민 놓고 강한 대립 = 두 사람은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 유입 이슈를 놓고도 강하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해리스는 자신이 국경 통제 임무를 맡았음에도 불법 국경 통과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지적에 트럼프가 국경보안법을 저지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해리스는 해당 법안의 내용을 설명한 뒤 “트럼프가 의회의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법안을 폐기하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왜 그랬는지 아나.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트럼프는 “그들(바이든 행정부)은 범죄자를 허용했다. 테러리스트도 허용했다”며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의 범죄는 훨씬 줄었다. 왜 그런지 아나. 그들이 범죄자를 우리나라에 들여보냈기 때문”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는 특히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등 일부 지역을 꼽으면서 “이민자들이 거기 사는 주민들의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AFP통신은 트럼프가 틀린 주장을 되풀이하며 이민자들을 비방했다고 보도했다.

◆ 트럼프, 해리스 인종 정체성 공격 피해 = 트럼프는 해리스를 겨냥한 인종 정체성 공세가 역풍을 부른 것을 의식한 듯 이날은 “난 그녀가 어떤 인종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월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행사에서 해리스가 스스로를 인도계로만 내세우다가 몇 년 전 갑자기 흑인이 됐다고 주장하면서 “난 모르겠다. 그녀는 인도계냐 흑인이냐?”라고 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트럼프는 “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가 무엇이 되고 싶든 난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한때 흑인 정체성을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리스는 “자기 경력 내내 인종을 이용해 미국인을 분열시키려고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게 비극”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미국인 대부분은 우리에게는 서로를 분리하는 것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특히 인종으로 우리를 분열시키려고 시도하는 이런 접근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미국인들이 서로 손가락질하게 만들려고 계속 시도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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