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근로자 산업안전

외국인근로자, 전체 대비 산재사망 발생 1.4배 높아

2024-09-13 13:00:04 게재

대다수가 소규모 사업장 종사, 사고사망자 비중 10.5% … 아리셀 참사, 안전보건교육 사각지대 확인

6월 24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참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대다수는 외국 국적으로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고 한국인은 5명이었다.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지난 6일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 인력파견 업체 메이셀 대표 등 3명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파견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고용부는 “화재·폭발 위험이 높은 물질을 취급하는 제조업체에서 경영책임자가 화재 위험 등을 파악·개선하고 급박한 위험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등 중대재해법상 의무 이행을 소홀히 했다”며 “이러한 경영책임자의 의무 불이행이 비상구 및 비상통로의 설치·운영 등 안전조치 의무 미이행으로 이어져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자가 숙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위험물질에 대한 교육도 없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재해가 발생했고, 근로자 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로부터 근로자를 제공받아 파견 대상업무가 아닌 직접생산공정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등 파견법 위반 혐의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아리셀 화재참사는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사각지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합동 감식 6월 24일 오전 발생한 경기 화성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참사로 근로자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18명이 외국인이었다. 사진은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외국인 근로자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빈 일자리를 외국인 근로자가 채우고 있다.

통계청 ‘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우리나라 상주 외국인은 143만명으로 이 가운데 취업자는 92만3000명에 달한다. 이들의 78.9%는 아리셀과 같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외국인(E-9, H-2 비자)의 89.6%가 제조업에 집중돼 있다.

◆F-4 비자 등 외국인력 안전교육, 사업주 재량 =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의 비전문 일자리에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E-9(비전문취업) 비자, H-2(해외동포) 비자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고용허가제 규모는 E-9 비자를 기준으로 2021년까지 5만6000명 수준에서 2022년 6만9000명, 2023년 12만명, 올해 16만5000명(2024년)으로 크게 늘렸다. 3년 만에 고용허가제 규모를 3배 이상 확대한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로 외국인 근로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E-9 비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임업 광업과 일부 서비스업 등으로 정해져 있다. 최근 음식점 주방보조로도 고용이 가능해지는 등 허용 업종과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9월엔 서울시가 가정에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일하는 시범사업도 시작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의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서툰 한국어와 문화차이 등으로 산업재해 위험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지난해 산재보험 유족급여 지급이 승인된 사고사망자 812명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 사고사망자는 86명으로 10.5%를 차지했다. 특히 건설업(55명, 64.7%)과 50인 미만 사업장(57명, 67.1%)에서 많이 발생했다. 전체 근로자 대비 사망사고 발생 확률은 약 1.4배 높은 수준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허가제(E-9, H-2 비자)는 국가 주도로 입국 전·후 산업안전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동포비자(F-4) 등 다른 비자로 취업한 외국인은 의무로 정해진 산업안전교육 기준이 없어 사업주의 재량이다. 외국인 고용사업장은 주로 영세해 사업주의 안전의식 미흡 및 여력 부족 등으로 내실있는 맞춤형 교육이 어려운 현실이다.

◆모든 외국인 근로자 안전교육 의무화 = 정부는 지난달 13일 ‘외국인 근로자 및 소규모 사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6월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와 같은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비자 종류와 관계없이 92만명에 달하는 모든 외국인 근로자들이 취업 시에 한번 이상 전문교육기관을 통한 기초 안전보건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작업을 추진한다. 아라셀 참사에서 다수 희생된 재외동포 등 F계열 비자 외국인 근로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고유형과 주요 공정별 안전수칙을 모국어로 번역해 제공하고 11월부터는 외국인 근로자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제작해 보급할 예정이다.

외국인 유학생이나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안전보건 통역사’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장기근속 외국인 근로자를 사내·지역 ‘외국인 안전리더’로 지정해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안전교육과 작업 노하우 등을 전수하도록 지원한다.

안전시설 설치에 대한 정부 지원도 강화한다. 화재·폭발 예방을 위해 사업장에 비상구 형광표시나 격벽, 소화·경보·대피설비 등을 설치하면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한다. 사고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의 안전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10년 만에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평균 19% 인상하기로 했다. 스마트 안전장비 구입·임대비 지원을 현행 40%에서 단계적으로 100%까지 올린다.

위험성평가의 실효성을 제고한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이 스스로 유해·위험 요인을 찾고 개선하는 과정이다. 정부는 위험성평가 심사항목을 강화하고 인정기준도 상향하는 한편 인정기간 중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료 감면액을 환수하도록 관련 법 개정도 추진한다.

또 소규모 사업장이 보다 쉽게 온라인으로 위험성평가를 할 수 있게 위험성평가지원시스템(KRAS)도 개선한다. 4월 마무리된 산업안전 대진단에서 적색 등급을 받은 사업장은 3개월 내 전문기관 컨설팅을 제공하고 6개월 내에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컨설팅 시엔 사업주·경영책임자 면담도 의무화한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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