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심장지대’ 중앙 유라시아 지역의 신 지정학

2024-09-19 13:00:02 게재

중국-인도-러시아는 상호 경쟁 갈등 협력하는 관계다. 각각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엮여 있다. 공동협력은 3국 외무장관회의를 기반으로 지탱해왔다. 외무장관회의를 통해 테러 기후변화 에너지 경제 안보 등 국제현안에 공동입장을 조율하고 다극화 국제질서에도 인식을 공유한다. 그런데 2005년 이래 매년 총 18차례 열렸던 3국 외무장관회의는 2022년 이후 잠시 중단된 상태다. 인도가 중-인 국경분쟁의 우선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3국이 벌이는 대표적인 경쟁의 무대는 중앙 유라시아 지역이다. 이곳은 미-일-중-러가 개입된 동아시아에 못지않게 치열한 ‘지정학의 귀환’ 현장이다. 영국의 지정학 창시자 존 매킨더가 “이곳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호령한다”고 지적했던 바로 그 ‘심장지대(Heart Land)’다. 또한 이곳은 해양세력의 강자 대영제국이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대륙세력의 맹주 러시아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100년에 걸쳐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현장이기도 하다.

중국-인도-러시아의 지정학 경쟁

21세기에 이르러 그 ‘심장지대’에 지정학 경쟁이 재현되었다. ‘지정학의 귀환’은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정권과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미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색깔혁명’의 반정부 시위 배후역할에 의심을 가진 우즈베키스탄이 2005년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가세하면서 미국의 지배는 불발에 그쳤다.

이에 인도가 미군 철수 공백에 편승해 ‘북방정책(Look North Policy)’으로 중앙아시아 주도권 공유에 가세했다. 상하이협력기구(SCO)는 2017년 인도를 정식 회원국으로 맞아들였다. 역내 영향력 균형을 맞추려는 러시아가 인도의 가입을 중재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최고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가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오랜 영향력 경쟁을 지속해왔다. 원조 지정학의 심장지대에서 현대판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중-인-러 3국은 역사적으로 경쟁과 갈등의 구원(舊怨)으로 얽혀 있다. 1962년 중국과 인도는 국경전쟁을 치렀다. 소련이 무기를 지원했지만 인도는 패배했다. 중-소는 1969년 우수리강 국경분쟁으로 충돌했다. 절박한 핵전쟁 위기에 중국은 서둘러 미국의 손을 잡았다.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는 중국이 파키스탄을 후견하고 소련은 인도를 지원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는 중국이 아프간 반군 무자헤딘을 지원하며 소련과 신경전을 벌였다.

이처럼 복합 갈등의 3국이 새로운 협력 기제를 창출한 것은 세력균형과 다극화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진행중인 중-인 국경분쟁이 3국의 전략적 협력에 장애요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 전략적 이익의 공유 공간이 더 크다. 그래서 양국은 2000년대 들어와 세차례 추가 국경충돌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황 악화를 자제하고 있다.

경제협력이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에도 3국은 인식을 공유한다. 3국 협력은 세계경제 거버넌스 메커니즘, 무역정책, 개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발전에 이익을 가져온다는 입장이다. 안보협력에도 연대공간이 있다. 2022년 9월 연해주 중-러 합동군사훈련인 ‘동방(Vostok)-2022’에는 인도가 13개국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3자 전략적 협력의 대표적인 공간이 SCO다. SCO는 대미 견제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항마 성격의 지역 다자기구다. 중국과 러시아는 SCO 확장을 상호 협력과 견제의 제도적 균형전략에 활용했다. 국제관계의 민주화 및 다극체제 구축이라는 전략적 비전을 공유하면서 안보와 경제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다. 인도 파키스탄 이란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SCO 10개국은 전세계 인구의 43%, GDP 총액의 37.8%를 차지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경쟁 갈등 협력의 전략적 공생

중앙 유라시아를 둘러싼 중-인-러의 특별한 삼각관계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 쌍의 양자관계에 얽힌 경쟁 갈등 협력의 복합지정학 때문이다. 이는 일회성 단기 이익의 모색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적인 소통과 조율, 공유와 실천을 통해서 형성된 ‘전략적 공생’의 기제다.

인도가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유연한 전략과 균형외교를 직시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당면하게 될 전략적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신봉섭 광운대 초빙교수 전 중국 심양주재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