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간 행정통합 논의 전국으로 확산
대구·경북 통합 무산 위기에도
대전·충남 부산·경남 논의 속도
정부도 행정체제개편 방향설정
대구·경북 통합 논의가 위태롭다. 하지만 갈등을 빚으며 제기된 쟁점들이 통합 논의를 진행 중인 다른 시·도에는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 행정체제 개편의 불씨를 살리려는 정부에 중요한 의제를 던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19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경북 통합 논의는 사실상 무산 위기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시대위원회 등이 마지막 불씨를 살려보려 하지만 양 지자체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대화를 재개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하지만 대구·경북이 쏘아올린 행정통합 논의는 다른 지역에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실제 대전과 충남은 충청권 메가시티 추진과 별개로 행정통합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최근 내일신문과 만나 “대구·경북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통합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충남도청에서 대전시와 충남도가 가진 인사교류 간담회도 행정통합을 전제로 한 자리다. 이 자리에는 양 지자체 인사담당자들이 참석해 실질적인 교류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충청권 4개 시·도의 행정통합이 어렵다면 충남과 대전만이라도 먼저 행정통합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미 대전시와는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통합논의에 자극받아 마음이 급해진 부산·경남은 다음달 초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앞서 대구·경북이 간과한 ‘주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다. 이는 행정통합의 성패가 주민 수용성에 달렸다고 보고 설득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대구·경북이 간과한 이 문제가 이후 통합 논의를 진행 중인 지자체들에겐 필수 의제가 된 셈이다.
광주와 전남에도 새로운 고민을 던졌다. 통합을 추진 중인 지역이 대구·경북 뿐이라면 좀 더 관망하겠지만 부산·경남과 대전·충남까지 통합 분위기가 고조될 경우 광주·전남만 논의에서 빠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특별자치도 출범을 준비 중인 전남의 고민이 깊어졌다. 행정통합 논의와 특별자치도 추진을 함께 진행하는 게 어색해질 수 있어서다. 명창환 전남도 행정부지사는 “특별자치도 전환을 준비하는 이유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고 자치권을 확대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통합 논의와 근본 취지가 다르지 않다”면서도 “다만 중앙정부의 지원방향 등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수 있는 만큼 경제통합을 우선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권역별 행정통합 논의를 반긴다. 특히 내년 민선 지방자치 30주년을 계기로 전국적인 행정통합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눈치다.
지난 5월 출범한 행정안전부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 자문위원회도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다음달에는 기본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과거 도와 직할시가 분리된 지역을 우선 통합하는 안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대전·충남 광주·전남이 대상이다. 제주·세종·강원·전북은 이미 특별자치시·도로 출범한 만큼 통합 논의의 우선 대상에서 빠져도 큰 무리가 없다. 주변 지자체 통합 논의에 참여할지를 두고 고민 중인 울산과 충북을 제외하면 4개 권역 통합만으로도 전국적인 행정체제 대전환 효과를 얻는 셈이다.
다만 행안부는 통합 논의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망설이고 있다. 1960년대 추진한 전국적인 시·군 통합을 제외하면 정부 주도로 행정통합을 추진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2009년 대대적인 인센티브를 공약하고 추진한 행정구역 통합은 18개 지역, 46개 시·군이 신청했지만 이듬해 경남 마산·창원·진해 1곳만 성사됐다. 충북 청주·청원 통합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1994년과 2009년 두 차례 시도해 실패했고, 다시 5년이 지난 2014년에야 겨우 성사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중앙정부 주도로 추진한 행정통합이 갈등만 유발하고 무산된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런 경험 때문에 지자체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통합논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가 바뀐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행정체제 개편의 큰 방향은 시·도 통합이 될 것”이라며 “이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합 논의가 구체적인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