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미 연준의 이례적인 ‘빅컷’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은 지난 18일, 4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5.5%에서 5.0%로 0.5%p나 낮췄다. 유럽중앙은행(ECB)이 2년 만에 기준금리 ‘피벗’을 선언한 올해 6월 당시만 하더라도 미 연준은 6월부터 연 3회에 걸쳐 인하할 예정이던 올해 기준금리를 연 1회 인하하는 것으로 계획수정하겠다고 할 만큼 기준금리 인하에 보수적이었다. 그런 미 연준이 돌연 ‘빅컷’을 단행했으니 이번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연준의 예사롭지 않은 태세전환, 경기침체 알리는 신호탄일까
미 연준의 갑작스런 태세전환으로 통화정책 방향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같은 날 함께 공개된 미 연준 의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는 올해 연말까지 추가 0.5%p, 내년에는 분기별 0.25%p씩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 연준은 기준금리 결정 시 참고하는 준거인 이른바 중립금리를 현재 몇%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시장에서는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언급했듯 과거처럼 중립금리를 제로금리나 마이너스 금리로 보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한두해 사이 기준금리가 최소한 2~3%대까지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예상과는 별개로 미 연준이 ‘빅컷’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가령, 미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번 ‘빅컷’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어 여당인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 인하에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선을 그은 뒤, 경제침체에 대한 우려와 고용시장 악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고용 및 경제전망의 지표로 활용되는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 증가 수는 지난 6월에 20만명대를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7월 11만4000명, 8월 14만2000명 등 10만명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CPI)는 꾸준히 물가 안정 목표치인 2%대를 유지한 결과 미국 내에서도 이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었다.
그렇다면 근래 들어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보이고 있는 미국경제가 앞으로도 ‘골디락스’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미리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이라는 파월 의장의 발언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만하다.
그런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빅컷’이 앞으로 미국경제를 포함한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직전 4%대이던 기준금리가 1년 만에 0.25%까지 떨어진 사례나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준금리를 단숨에 1%나 내렸던 사례를 떠올려 본다면 앞으로 여러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있을 수 있다는 미 연준의 ‘피벗’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라가르드 ECB 총재, 1920년대 대공황 빗대며 세계경제 균열 경고
일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 전쟁이 발발하고 올 여름 미국 주요 산유시설을 허리케인이 강타했음에도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유가가 60~70달러대에 머물러 있다거나, 크리스틴 리가르드 ECB 총재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본부에서 한 연설에서 현 상황을 1920년대 세계 대공황에 빗대며 세계화 후퇴와 글로벌 공급망(GVC) 해체로 세계경제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점은 미국경제를 제외한 세계 경제가 이미 침체국면으로 접어든 상태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그나마 나홀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마저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해야 할 만큼 경제전망이 어둡다면 그 영향이 일파만파 세계경제로 번져나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